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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212화 엿 장군(현지어: 떼쪼 엿) 이야기
껌뽕스와이 지역에는 “미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왕실의 위대한 장군이자 대부호’를 의미하는 “옥냐 떼쪼 보롬 리엇”이라는 작위가 있었는데 통상적으로 “미어 장군(현지어: 떼쪼 미어)”이라 불리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안주인 “스레인 여사”, 그리고 항상 모든 전장을 함께 따랐던 “엿”이라 불리는 믿음직한 수하 장수가 있었다.
한편, 당시 껌뽕츠낭 지방에서는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성을 구축해서 군대를 배치한 자가 있었다. 그는 “썸레왕”으로 불리었으며, 국가 전역의 통치권을 거머쥐기 위해 “뿌레야밧쩨이쩨스다왕”에 반기를 들고 맞섰던 반군의 우두머리였다. 그래서 미어 장군과 엿은 군대를 동원해서 이들 반군을 진압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스레인 여사는 미인계로 썸레왕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해서 그를 술에 취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미어 장군과 엿은 썸레왕과 반군을 처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미어 장군은 스레인 여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중 반군을 진압할 때 입은 내상이 발작해서 급사하고 말았다. 그의 수하 장수였던 엿은 왕명에 따라 장군직을 물려받아서 이때부터 엿 장군(현지어: 떼쪼 엿)으로 불리게 됐다. 이어 뽀삿 지방을 침입한 시암(태국) 군대를 평정하도록 명을 받아서 그는 바로 출정했다. 그곳에서 고전 중이던 옥냐 짜끄리 장군과 옥냐 끄럴라하옴 장군으로부터 적을 소탕하는 데 실패한 사정을 들은 엿 장군은 왕실 내부에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군대를 회군해서 껌뽕스와이 지역의 롱와엑을 포위하고는 ‘내부의 적’를 색출하는 작전을 펼쳤다. 적은 바로 왕의 정부였던 “넥므니어누”의 동생인 “믄짜이쫑락”으로 밝혀졌다. 엿 장군은 믄짜이쫑락을 바로 처단했다.
동생의 죽음을 들은 넥무니어누는 엿 장군을 죽일 것을 간청함에 따라 왕은 그를 소환하려 했다. 그러나 엿 장군은 시암 군대를 퇴치한 후에 처벌을 달게 받기로 하고 왕명을 따르지 않았다. 넥무이니어누가 거듭 처벌을 요구하자 결국 엿 장군은 양자 대면해서 소명해야 했다. 이때 그는 넥무이니어누를 시암의 첩자라고 폭로했는데, 그때 믄짜이쫑락 일파가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넥무이니어누에게 칼을 던져 죽였다. 엿 장군은 처벌을 유예하고 다시 전장으로 복귀해서 시암 군대를 무찌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앞서 유예한 처벌을 각오했지만 왕은 엿 장군을 사면하고 껌뽕스와이 지역을 통치하도록 임명했다.
엿 장군은 스레인 여사가 미어 장군과 결혼하기 전부터 사모했었다. 이제 그는 그녀에게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심정으로 3번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스레인 여사는 전남편의 수하이자 출신이 천한 소수 민족이었던 엿 장군을 남편감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엿 장군은 수하를 시켜 스레인 여사가 매일 밟고 오르는 계단을 뜯어내어 고귀한 불상으로 제작하도록 했다. 다음으로 불교 행사를 성대하게 조직해서 그녀를 초대했다. 불상에 성스럽게 절을 올린 그녀는 불상의 제작과정을 듣고 나서 엿 장군과의 결혼을 동의했다.
“엿 장군 이야기”는 크메르 역사 소설이다. 시대적으로 “뿌레야밧쩨이쩨스다왕” 집권기(1575-1593)는 캄보디아가 외세의 침략과 왕실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었다. 당시 수도였던 우동과 1594년에 결국 시암이 식민정부를 세웠던 롱와엑, 그리고 껌뽕스와이, 뽀삿, 껌뽕츠낭 지방이 무대이다. 이야기는 암울한 역사에서 크메르인의 불굴의 국가 수호 의지를 엿보게 한다. 작가 띠 찌후엇(1952~1987)은 이 작품을 1983년에 신문에 연재했다. 따께오 출신인 그는 1969년부터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1971년부터는 소설가, 1975년에 이발사로도 일했다. 뽈뽓 정권이 전복된 후에는 친정부 어용 문인으로서 모든 형태의 문학을 다양하게 창작했다.
글 이영심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