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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그늘, 용산과 캄보디아‘동병상련’
경제는 성장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더 늘어난다. 개발을 할수록 빈민층이 늘어나고 평범한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매년 GDP 성장률 6~7%을 기록하는 캄보디아도 마찬가지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는‘경제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살던 지역에서 강제퇴거를 당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벙깍호수 상황 2009년 용산과 비슷
지난 5월 8일 주한 캄보디아대사관이 위치한 서울 한남동에서 용산참사 철거민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과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벙깍호수마을 대표 보브소피가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연 기자회견에서“캄보디아 정부는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단행되는 폭력적인 강제퇴거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양은선 간사는“한국과 캄보디아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단순히 캄보디아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이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생각에 용산참사범대위와 공동으로 기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캄보디아 정부는 대규모 산업 개발을 위해 토지를 사기업에 장기 임대하는 경제적 토지양여 제도를 시행 중이다.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을 받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미 4000가구가 마을을 떠났고, 현재는 700가구만 남아 강제퇴거에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항 과정에서 국제엠네스티가 지정한 양심수 욤보파는 현재 체포돼 수감된 상태다.
이충연 위원장은 현재 캄보디아 벙깍호수의 상황이 2009년 용산참사와 닮은꼴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마을주민들이 폭압적인 강제퇴거를 처음 겪으면서 당황하는 모습들, 누구 하나 의지할 데 없어서 의지할 곳을 찾고 싶어하는 모습들이 2009년 우리의 모습과 똑같았다”고 말한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이원호 사무국장은“현재 캄보디아 상황이 우리나라 1980~90년대 수준이라고 하지만 강제퇴거가 진행된 과정은 용산참사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보브 소피는“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포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며 “이렇게 발전되고 현대화한 도시에서 참혹한 철거과정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한 달 남짓 감옥에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웠는데 이충연 위원장은 4년 반을 살고 나왔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개발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렸다는 것에서부터 용산과 캄보디아는 닮은꼴이었다. 2009년 용산참사가 벌어지기 전 이충연 위원장은 부모님과 함께 남일당 건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상가세입자에게 책정된 보상금은 평균 2300만원. 시설비, 권리금까지 더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그 돈을 받고 새로 개업을 하고 가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용산구청에 찾아가 호소를 하고 변호사도 알아봤지만 대책이 없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이 위원장이‘투쟁’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남일당 건물의 화재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 위원장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 등으로 5년 4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벙깍호수마을 대표 보브 소피도 마을에서 미트볼 장사를 하는 평범한 세 아이의 엄마였다. 남편은 이 지역에서 자동차 운전사로 일했다. 남편의 한 달 월급은 300달러였고, 보브소피는 장사가 잘 되는 날에는 하루 25달러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중산층 수준의 소득이었다. 하지만 벙깍호수가 개발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정부가 사기업 ‘슈카쿠’에 벙깍호수 개발을 맡긴 것은 2003년부터였다. 2007년부터 강제퇴거로 쫓겨나기 시작한 주민들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보브소피는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개발의 수혜자가 지역주민이 아니라 대기업이라는 것도 용산과 캄보디아의 닮은꼴이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용산 4구역에는 지하 7층, 지상 40층짜리 초대형 건물 6개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당시 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문제로 개발이 중지되고 이후 부동산 경기가 악화해 재개발 진행이 멈춰진 상황이지만, 2008년 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시공사로 선정된 삼성물산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로 1조4000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벙깍호수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인 ‘슈카쿠’ 또한 캄보디아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다. 특히 슈카쿠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여당 상원의원이다. 일종의 정경유착인 셈으로 캄보디아 내에서는 재력으로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개발로 자신들 삶의 터전 빼앗겨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도 필요하다. 캄보디아 주민들과 활동가가 한국에 초청되면서 캄보디아 정부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며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이제껏 국제연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연대하면서 아시아 내에서 강제퇴거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함께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주간경향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