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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영혼의 집
시원의 슬픔을 일깨우는 파이프 오르간 선율, 세속의 찌꺼기를 정화하는 짙은 향내, 생면부지 한 망자의 장엄한 전례를 훔쳐보면서 종교에 입문한 나에게 종교란 다분히 우연적이고도 감상적인 것이다. 아직 신에 대한 사랑은 배워가는 중이지만 신을 사랑하는 우리 인간에 대한 애련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성聖스러운 것보다 성性스러운 것에 솔깃 하는 속물이지만,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의 삶을 이어가는 동포들과 한 날 한 시에 같은 예를 올리노라면, 한 줌 위안의 갈구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듯한 동병상련의 느낌도 그렇고, 하늘을 가득 채우는 기도들도 그렇다. “나 바람 나지 말라고 /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편 바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시인 서정주 아내의 기도, 내 새끼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우리 부모님의 기도, 누가 보더라도 남부럽지 않을 것 같은 부부의 간절해 보이는 기도….
이민 사회가 토착민 사회에 비해 더 종교적이라고 한다. 그 이유로 모국의 친족에게 받았던 유대감이 단절된 이국땅에서, 교우들을 일종의 친족 대체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미국이 유럽 본토보다 더욱 열성적인 기독교 국가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한다. 고국을 떠나온 사람들은 크든 작든 좌절을 겪은 경우가 많다. 모험 없는 인생이라야 보잘 것도 없는지라 현실에 굴하지 않고 박차고 나온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만, 새로운 모색이 그렇듯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상처 주기 십상이다. 그 상처의 치유는 시간을 요하고 시간은 늘 신의 영역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캄보디아에 살게 되면서 의자도 없는 성당 바닥에 쭈그리고 앉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푸삿의 성당 개보수를 핑계로 쫄 츠남 연휴에 지방 나들이를 다녀왔다. 오래된 목조건물인 성당은 체중이 무거운 신도는 입장을 불허해야 할 정도로 낡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허물고 지어야겠다는 건축쟁이적 상상보다 신의 거처로 안성맞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귀경차량이 몰려 서행하는 차창 밖으로 다양한 종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불교 사찰, 이슬람 모스크, 기독교 교회, 가톨릭 성당…, 하나같이 일반 가정집만큼이나 작고 소박하다. 세상 이런 저런 종교를 섭렵해본 사람은 종교란 방이 많은 집과 같다고 한다. 전망 좋은 방을 좋아하는 사람, 편리한 방을 좋아하는 사람, 책이 많은 방을 좋아하는 사람…, 누구나 마음 붙일 곳이 필요하고 저마다 안락한 처소를 찾는다는 의미일 테다. 캄보디아는 불교가 국교로 공포된 불교국가지만 여타의 종교와 조화롭게 공존한다. 종교분쟁으로 영일이 없는 민족과 달리 볼 상 사나운 꼴은 보기 힘들다. 모든 것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캄보디아인 특유의 종교관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지 않게 되면서 정신과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는데, 캄보디아에서 정신과가 성업하는 날은 머나먼 훗날이 될 것 같다./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