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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창문을 열고] 실전에 예고편은 없다.
(2022년 11월 25일 연재 칼럼)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주 많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평생 갚지 못한 은혜를 입는가하면, 철천지원수가 될 법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없는 사랑을 베풀기도 한다. 평생을 의지하던 부모님의 병환 앞에서 사람이라 존재가 얼마나 한치 앞을 알 수 없는가. 뼈아픈 레슨을 받고 있다. 1분 1초도 예고할 수 없기에 의미 없는 것들을 하나 둘 씩 손에서 내려놓게 된다. 놓칠세라 꽉 움켜쥐고 있던 자존심, 상처, 아집, 교만이 진짜 소중한 것을 못 보게 눈을 가리고 있으니 말이다.
한 수 두 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때뿐이다.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늘 실수는 하기 마련이다. 예고하지 않은 재앙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도망뿐. 어디로 도망을 갈지 수십 번 연습했더라도 실전은 다르다. 일이 일어날 때는 ‘하필’ ‘마침’ ‘그날따라’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올 5월 두차례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아버지가 실종됐었다. 실종 사건은 늘 그 당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곳에서 일어났었다. 심장이 바닥에 내려앉고 엎드려 울부짖을 힘도 없었다. 며칠 전, 다시 실종 사건이 일어났다. 세 번의 실종 중 가장 빠른 6시간 만에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예기치 않은 이 사건으로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시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어떻게 예방해야 하지?’ 번민하기 시작했다. 이 일을 둘러싼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무시무시한 죄책감과 끝없는 무기력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건강하게 돌아온 아버지를 마주하지는 않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일어나기 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머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번민을 그치기로 결심했다. 어느 때나 예기치 않은 일들은 일어난다. 그것을 막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해도 막을 수 없는 것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고 돌아와 주셔서 감사, 한 마음으로 기도해 준 공동체에게 감사.. 감사 할 때 마음이 썩지 않았다. 움켜쥐고 있던 불안감을 놓고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은 나의 성실한 아버지를 바라봐야 숨통이 트인다.
무엇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지, 내가 어리석게 쥐고 있는 마지막 한줌의 교만은 무엇인지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어서 손을 탁탁 털어 버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