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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창문을 열고] 까로나는 내 오빠
(2022년 5월 6일 연재 칼럼)
요즘은 가족들에 대한 생각과 걱정으로 하루 24시간이 꽉 찬다. 여느 캄보디아 교민 가정과는 달리 나는 3대가 함께 프놈펜에 거주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도 함께 살았으니 정말 여기가 캄보디안지 한국인지 중요하지 않은 안정적인 생활을 감사하게도 누려왔다.
2001년 2월 흙먼지가 뿌옇게 날리던 뚤꼭의 한 한적한 골목에서 내 첫 캄보디아 생활이 시작됐다. 나보다 일주일 먼저 캄보디아에 온 아빠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눈에서 예수님을 보셨다고 하시며 캄보디아와 사랑에 빠져버리셨다. 그렇게 시작된 캄보디아에서의 삶은 여러 일들이 일어났고, 그 중 하나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군 제대를 마치고 캄보디아에 온 나의 하나뿐인 오빠는 캄보디아어를 배우면서 금세 친구에게 ‘까로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나보다 3년 정도 늦게 온 터라 당시만 해도 오빠는 정지대 사장님의 아들, 인솔이의 오빠라고 소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 온지 1년 만에 캄보디아어를 가르치는 그 유명한 노란책을 쓰고 한국인 대상 수업을 시작하더니 유튜브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 까로나 채널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일엔 잠도 안자면서 달려드는 성향인지라 무엇을 하던지 열정과 정성이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빠의 캄보디아어 강의 영상을 보고 언어와 문화를 접했다. 구독자수나 조회수가 점점 늘었다. 폭발적이진 않지만, 사심 없이 캄보디아를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통했다. 그리고 현재 까로나 캄보디아 채널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유튜브 채널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을 하던지 다 잘하던 사람이라 부끄럽지만 한때는 오빠에게 열등감도 있고 질투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어딜가나 “까로나님 동생분..? 영상에서 본 적 있어요~”라고 알아보신다. 내심 기쁘고 자랑스럽다. 바로 옆에 있을 땐 내가 얼마나 기대고 있었는지 잘 몰랐는데 당분간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쉽고 미안하기만 하다.
미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남은 자리에 사랑과 응원을 보태려고 한다. 기도는 물론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