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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창문을 열고] 여권 분실
(2021년 8월 19일 연재 칼럼)
평소에 필자는 꼼꼼과는 거리가 영 멀고 덤벙대고 잘 까먹는 캐릭터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건 재차 확인하며 챙겨왔는데… 지난주에 딸 여권을 잃어버렸다. 해외 살이 20년만에 처음으로 여권을 잃어버렸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단순히 여권 하나 잃어버린것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던 한 주 였다.
처음은 현실부정이었다. ‘에이 아니야, 어디에 있겠지. 좀 이따 찾아보지 뭐’ 그 와중에 느긋하기 했다. 있을 것 같은 자리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여기도 없네, 저기는? 어? 없네..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 두 번째 감정이 찾아왔다. 바로 ‘분노’다. 평소보다 조금 분주했던 분실 당일을 떠올리며 ‘왜 나한테 여권까지 맡겨서.. 아니 난 받은 기억도 없는데… 본인이 좀 챙기지…’ 딸도 원망했다가 남편도 미웠다가 마음속에서 화르륵 불씨가 커지는 느낌이었다. 다행이 분노를 쏟아내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훅 커질 수도 있던 불씨에 침착의 물을 붓고 잘 해결됐나 싶더니 막강한 세 번째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첫 번째, 두 번째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감정, 그것은 ‘좌절감’이었다. ‘잘 챙긴다고 챙겼는데 왜 그거 하나 간수 못했지…’ ‘벌써부터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건가.. 유전인가..’ 곱씹어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었는데 머릿속이 정전된 듯이 삽시간에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은 무기력함이 짓누르는 것 같았다.
대체로 사람들에게 우울감이 짙어질 땐 문제의 본질에서 저 멀리 동떨어진 상태에서 자신만의 동굴 파고 있을 때일 것이다.
자, 처음으로 돌아가자. 난 단지 여권을 하나 잃어버렸을 뿐이다. 주변에서 날 배려 안한 것도, 스스로가 무능한 것도, 가족력이 발동한 것도 아니다. 단지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글씨의 초록색 수첩 같은 것을 잃어버린 거고 잃어버리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이 간단 명료한 답이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아직도 드문드문 마음이 무거워지고 한다. 이런 내 자신이 나도 잘 이해되지 않지만 그렇게 사람은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당혹해하고 익숙해지고 극복하면서 사는 건가보다.
아직도 소파 밑이나 책장 어디 사이에 여권이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아.. 여권아 어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