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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110화 바탐방과 따덤봉끄러늉 전설
▲ 바탐방을 상징하는 따덤봉끄러늉(흑단나무 방망이 신령님) 동상
따덤봉끄러늉(Preah Bat Dambang Kranhoung) 동상은 바탐방주 시내의 원형 교차로 중심에 있다. 온 몸의 색깔은 검은 빛이며 두 손은 검은 방망이가 놓인 받침을 잡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 분은 ‘따’=신령님, ‘덤봉’=방망이, ‘끄러늉’=검정색 또는 흑단나무(黑檀, ebony)라는 각각의 뜻풀이를 종합해서 “흑단나무 방망이 신령님”이다. 캄보디아 역사에서 ‘꼿땀아머떼워리엇 왕’ 또는 ‘덤봉끄러늉 왕’(재위: AD1001-1008)으로 불리는 크메르제국의 통치자로서 그의 전설은 ‘바탐방’이라는 지역의 유래를 밝혀주기도 한다.
옛날에 피부색이 검보라빛을 띄는 덩치 좋고 힘센 농부가 살았다. 그는 숲에서 발견한 흑단나무로 방망이를 만들어서 ‘덤봉끄러늉’이라고 불렀고 자신도 그 이름으로 불렸다. 방망이는 신비한 파워가 있어서 차츰 덤봉끄러늉은 불교를 바로 세워줄 미륵의 현신으로 추앙받게 됐다. 당시는 크메르제국 왕의 무리한 사원 축조로 민심이 돌아서는 상황이었고, 권력과 탐욕에 빠진 끄러늉은 지지 세력과 함께 왕궁을 포위하고 병자였던 왕의 생명을 단축해서 왕위를 차지했다. 이때 왕의 군대와 무고한 남녀노소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다.
덤봉끄러늉 왕으로 등극한 후 밤하늘을 보는데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이 보였다. 기분이 이상했던 그는 즉시 점성술사를 불러서 예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점성술사는 위대한 왕이 태어날 징조라고 전하면서 덤봉끄러늉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7년7개월7일이 되는 날 자신의 왕좌를 찾으러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왕은 왕비나 후궁을 포함하여 모든 임산부를 죽이고 시체까지 불태우도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요절한 선왕의 후궁도 죽임을 당해 불에 태워졌는데 신기하게도 복중의 태아가 불 속에서 출산이 됐다. 태어난 남자 아이는 팔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고 병사들이 흑단나무 수풀에 숨겨서 무사할 수 있었다. 파고다의 주지승이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갓난아기를 데려갔다. 아이는 크면서 주지승의 지극한 치료 덕분에 화상자국은 없어졌지만 구부러진 팔다리는 펴질 줄 몰랐다. 바깥을 다닐 때면 엉덩이로 땅바닥을 끌면서 이동해야 해서 ‘뿌럼껄(앉은뱅이)’ 또는 ‘뽄니어끄라엑(흑단나무)’이라고 불렸다.
한편 덤봉끄러늉 왕은 7년7개월째 날 한밤중에 달빛조차 흐릿하게 만들만큼 밝게 빛나는 별을 보고는 이번에도 점성술사를 불렀다. 이에 따르면 최초의 예언은 여전히 유효해서 7일째가 되는 날 북동쪽에서 백마를 타고 새로운 왕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덤봉끄러늉 왕은 절규하며 7년7개월 된 전국의 아이들을 죽이도록 지시하고는 최후의 응전이라도 불사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백성들은 예언된 왕을 모시기 위해서 왕궁 앞에 모여들었고 앉은뱅이 뿌럼껄도 속도는 느렸지만 행렬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깐 여정에 지친 뿌럼껄이 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어떤 노인이 자신의 백마와 꾸러미를 잠시 맡아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말 밧줄을 뿌럼껄의 마비된 한쪽 손목에 묶은 후에 숲으로 사라졌다. 주인이 사라지자 백마는 껑충거렸고 그 바람에 뿌럼껄의 팔이 당겨졌는데 신기하게도 접혀져 있던 팔이 쭉 펴졌다. 그래서 다른 손과 두 다리에도 말 밧줄을 묶어서 모두 펴고는 노인이 맡긴 꾸러미의 의복을 꺼내 입으니 영락없는 왕족이었다. 내친 김에 뿌럼껄은 백마에 올라탔고 하늘을 날아 덤봉끄러늉 왕이 있는 수도 앙코르톰으로 향했다.
이에 질겁한 덤봉끄러늉 왕은 방망이를 사정없이 날렸지만 맞히지 못하고 멀리 날아서 어느 숲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오늘날의 바탐방(‘밧’=잃어버리다, ‘덤봉’=방망이)이라는 지역명이 생겨났다. 방망이의 강력한 파워가 사라진 덤봉끄러늉 왕은 자신의 시대가 다했음을 인정하고 왕좌를 내려놓고 라오스로 넘어갔다. 덤봉끄러늉은 라오스에서 코끼리떼를 평정한 공로를 인정받아 왕국의 공주와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라오스 왕의 견제와 계략에 말려서 큰 부상을 입고 크메르제국으로 돌아와 1008년에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글 이영심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