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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69화 바나나잎을 걸친 소년, 「짜으쓰러똡쩨익」
캄보디아에서 바나나 나무는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어린 바나나 나무 하나를 아무렇게나 땅에만 박아 놓으면 우기를 지나면서 쑥쑥 자라 올라서 그늘을 이루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뿌리도 땅속에서 쉼 없이 새순을 키워내어 일대를 바나나밭으로 만들어버린다. 척박한 땅에서도 비와 햇빛을 받아 자연스럽게 피어올라서는 속대, 꽃, 열매, 잎사귀 등을 모두 식재료로 캄보디아인에게 제공한다. 그러니 국가는 가난할지언정 시골길마다 아무데나 달린 바나나만 따 먹어도 당장의 주린 배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 「짜으쓰러똡쩨익(바나나잎을 걸친 소년)」의 책 표지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바나나와 관련된 캄보디아 설화 「짜으쓰러똡쩨익(바나나잎을 걸친 소년)」이다. 민간에서 구전하는 「떼웡꼬마」 이야기를 왕실 조각가였던 작가 요응인이 채록해서 1889년에 운문체로 정리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짜으쓰러똡쩨익’은 주인공의 어린 시절 이름이며, ‘떼웡꼬마’는 왕좌에 오른 후에 인드라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이다. 이야기의 서언에 따르면 강독수가 불교경전에서 유래를 주장했는데 오늘날 학자들은 아직까지 특정할 만한 불교경전의 출처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옛날에 톤과 폭이라는 백만장자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았다. 둘은 모두 자녀가 없어서 자식이 생기도록 유명한 사원에 기도하러 갔다가 처음 만나게 됐다. 동병상련으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만약에 딸과 아들이 생기면 결혼을 시키고, 동성이면 평생의 벗으로 지내게 하기로 약속했다. 그 후에 톤은 아들을 낳았고, 폭은 딸을 낳았다.
톤은 아들을 얻고나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는 하늘로 승천하여 인드라신으로 등극했다. 남편이 죽고나서 구걸로 연명하던 부인과 아들은 톤의 친구였던 폭을 찾아가지만, 문전에서 흠씬 두들겨 맞아 부인도 병에 걸려 인드라신의 곁으로 떠났다. 가진 게 없던 아들은 겨우 장만한 관에 자신의 옷을 벗어 깔고는 어머니의 시신을 안치했다. 그때부터 바나나잎으로 옷을 대신하면서 ‘짜으쓰러똡쩨익(바나나잎을 걸친 소년)’이라 불렸다.
짜으쓰러똡쩨익은 슬픔으로 어머니 무덤을 지키던 어느날, 꿈에 스승을 찾아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다. 이에 마을로 내려왔고, 그를 불쌍히 여긴 선생이 글을 가르쳐서 부처의 화신이었던 아이의 학식은 일취월장했다. 한편, 폭의 딸은 자신의 정혼자 짜으쓰러똡쩨익이 문전에서 어머니와 함께 두들겨 맞는 장면을 떠올리며 안타까움과 연민이 커졌다. 아버지를 속이고 짜으쓰러똡쩨익을 찾아가서 과일, 음식, 새옷 등을 주려 하지만, 그는 부당하게 죽어간 어머니를 생각해서 사랑스러운 그녀의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짜으쓰러똡쩨익은 스승과 함께 도시로 나갔다. 당시 왕국의 왕은 연로했고 딸만 있어서 흰코끼리에게 새로운 왕을 뽑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만약 흰코끼리가 무릎을 꿇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흰코끼리의 주인이 되고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고 정했다. 그런데 인드라신의 비호를 받은 짜으쓰러똡쩨익 앞에 흰코끼리가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이에 신들의 축복 속에서 왕좌에 오르고 ‘떼웡꼬마’ 왕이 되어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다.
얼마 후 왕과 왕비는 폭이 사는 마을을 여행하게 됐고, 짜으쓰러똡쩨익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평민의 복장으로 폭의 불법성을 조사하고 재판을 청구했다. 이에 아버지 죄의 증인으로 딸이 세워졌고, 짜으쓰러똡쩨익은 그녀가 사실을 증언하지 않으면 자결하겠노라 압박했다. 그녀는 아버지 죄를 밝힐 수도, 사랑하는 남자를 죽게 할 수도 없어서 갈등하다가 결국은 사실을 밝히고 아버지의 용서를 간청했다. 짜으쓰러똡쩨익은 재판에서 승소하고 그녀를 두 번째 왕비로 맞아 행복하게 살았다./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학과 이영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