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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영화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과 휴머니즘 조명
인터넷이 느려 터져 공들여 작성한 메일이 공중분해 되고, 찜 쪄 먹을 날씨에 사나흘씩 정전되기 일쑤라 냉장고의 찬거리를 싸들고 지인 집으로 피신하곤 했던 몇 해 전의 캄보디아를 떠올리면, 시원찮은 상황이라도 감지덕지하게 된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정상에서 끝나는 것이 최상이다>는 헝가리 속담이 있다. 배곯은 적이 없는 사람보다 오래 굶주리다 배를 채운 사람이 행복을 깊이 체험한다는 의미일 테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정상에서 끝난 인생하면, 너무 가난해 정규교육조차 받지 못했지만 대통령자리까지 올랐던 링컨이 그 전형이지 싶다. 그의 아내는 희대의 악처로 꼽히는데, 소크라테스와 공자, 톨스토이의 경우가 그렇듯이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게 하는 악처의 바가지가 성인과 철인을 만든 전례로 보아, 링컨은 여러 면에서 행운아(?)다. (프놈펜에 아직 성인군자에 대한 소문이 없는 걸로 보아 우리 주부들이 좀 더 분발해야 할 듯!)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은 노예제 폐지와 남북전쟁의 함수관계를 풀어나가는 링컨의 정치술과 고뇌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1863년 노예해방 선언을 하고 1864년 재선에 성공해 대통령직을 연임 하게 된다. 남북 전쟁의 종식, 산업 경제, 인본주의 등의 시대적 조류는 노예제 폐지를 공언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으나, 신대륙의 모든 것을 흑인과 공유하는 데 대한 법제화 국면에 이르자 현실적 저항이 심각하다. 야당의 극렬한 반대는 물론 주변 인물들조차 호의적이지 않은 사면초가의 정세, 자기연민에 빠져 히스테리를 부리는 아내, 위대한 영혼에게는 고립이라는 형벌이 내려지는 법이라던가. “너무 힘들어…” 링컨은 읊조린다. 위인의 나약한 모습에서 나 같은 범인은 현실을 견디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급기야 공화당 급진파마저 비관적인 논리를 펼친다. “나침판… 언제나 정북을 가리키지. 그런데 늪지대 얘기는 없더군… 목적지를 향해가다 장애물을 모르고 거꾸러져 늪에 빠지는 정도밖에 못 이루면, 정북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이요?” 링컨은 복잡한 정치적 마인드를 드러낸다. 노예제 폐지 수정안을 통과시키기까지 회유와 협박, 매수가 얽히고설킨다. “19세기 가장 위대한 법안은 순수한 남자의 부패로 통과되었다.”, 감독은 훌륭한 정책마저 권모술수 없이 관철되기 힘든 정치의 아이러니를 부각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사랑해서 한 일이 공공의 이익과 부합되는 경우라고 한다. 링컨의 노예해방을 두고 인도주의의 실현이었다거나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등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링컨이야말로 정치를 사랑한 사람으로 ‘원칙과 타협의 미학’으로서 정치자체에 몰입했고 그것으로 인류 진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듯하다. 새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을 초월해 정치만을 사랑하는 순수한 정치가가 우리나라에는 안 나오나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