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이방인의 지혜

기사입력 : 2012년 10월 26일

 

기숙사 학생들을 위해 샤워장을 만들고 여럿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샤워기를 몇 개 달아 주었다. 그런데 며칠을 관찰해 보니 샤워장에는 오직 한 사람씩만 들어가고 몇몇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한 사람이 샤워를 끝내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하나 들어가곤 했다. 같은 남자끼리라 하더라도 벗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의 관습을 몰라서 빚어진 일이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집안을 들여다보면 커다란 수건 같은 끄로마 한 장으로 아랫도리만 가리고 있는 남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웃통을 벗고 일을 하거나 밖에 나다니는 남자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런 것에 대비해서 보면 욕실을 함께 쓰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관습이 그러하니 이방인이 이 나라 사람들의 금기 사항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 여자들이 잠옷 바람으로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아침에 시장에 가보면 잠옷 패션(?)으로 다니는 그런 여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라의 복식 생활을 한국적 시각으로 본 결과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우리에겐 영락없는 잠옷으로 보이지만 캄보디아 여자들에게는 그것이 집 안팎에서 편하게 입는 일상복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커다란 카드 한 장을 내 보이며 퇴근 후에 생일 파티에 간다고 했다. 돈을 꽤 들여 인쇄된 초대장이라 누구의 환갑이나 칠순 잔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친한 학생의 조카 생일 파티에 가는 것. 한국적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십대인 아이의 생일잔치를 큰 연회장을 빌려서 하는 것도 그렇고, 별로 친분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초대장을 돌리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 선물을 사 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그렇고. 얼마 전에는 옆집에서 학교 주차장을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이 왔다. 외손녀 돌잔치 손님을 받기 위해서였다. 손님들이 타고 온 차량과 오토바이가 어찌나 많은지 한국의 칠순 잔치를 방불케 했다. 차린 음식도 매우 풍성했다. 물론 이런 풍조는 돈이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캄보디아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의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나라의 그것들보다 화려하고 성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이 간소화됐다고 하는데도 결혼식을 치르는 데 보통 이삼일이 꼬박 걸리고 일반 손님을 초대하는 피로연을 하루 종일 하기도 한다.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점령해서 포장을 치는가 하면 밴드를 동원해서 시끄럽게 행사를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생일잔치나 결혼식, 장례식에 갈 때에는 당연히 경조금을 가지고 간다. 도대체 한 번에 얼마를 내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보통 10달러에서 20달러 정도. 물론 자신의 형편이나 친분 관계에 따라 더 많이 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의 수입에 비춰 볼 때 상당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월급이 100달러도 안 되는 한 젊은 친구에게 10달러 이상을 축의금으로 내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결혼식에 몇 번 참석해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결혼 피로연에는 음식이 놀랄 정도로 풍성하게 나온다. 전문 요리 업체가 준비하는 코스 요리가 차례로 나오는데 주요 메뉴만 7~8가지가 되고 여기에 주류와 음료, 과일 등이 곁들여진다. 갈비탕 한 그릇으로 때우는(물론 성찬이 준비되는 호화 결혼식도 있지만) 한국의 결혼 피로연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니 축의금으로 10달러, 20달러를 내는 것이 예의를 갖추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생활 관습이나 의식은 각 민족마다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생소하다고 해서 배타적으로 볼 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이방인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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