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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길치만감
프놈펜에서 삼 년째 살던 때던가? 교민 회동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차편이 마땅치 않았다. 한 일행이 선뜻 바래다주마고 친절을 베풀었다. 모토톱과 툭툭이 대중교통의 전부이던 시절이라 동포끼리 그만한 호의를 나누곤 했다. 동승해서 계속 멀뚱히 앉아있자 운전대를 잡은 신사께서 “어디로 모실까요?” 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전용(?) 기사가 아니라는 사실과 우리 집 위치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막 통성명을 한 분에게, “혹시 우리 집 아세요? 여기가 어디지?”하고 말았다. 이집트사람들은 죽으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할 거라고 믿었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다른 하나는 남에게 기쁨을 주었는가? 틀림없이 나는 절반은 성공했다. 그때 그 사람들이 허리를 꺾으며 파안대소하던 모습이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팀의 연구에 따르면 길치는 타고난다고 한다. 뇌의 내비영역(Entorhinal region)에 위치한 ‘나침반 뇌세포’가 제대로 반응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길치 여부가 갈린다. “동물은 태어난 지 2주 만에 장소나 방향을 인식할 수 있다. 방향감각은 경험보다 선천적인 요인이 우선한다.” 그 팀의 프란체스카 가쿠치 박사의 주장이다. 조금은 위로가 되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길치와 지능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방향치의 상당수는 세상 보는 시야가 넓고 직관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무의식을 처음 발견해 인간의 정신 지도를 새로 작성한 오스트리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아침이면 동네로 산책을 나오곤 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못 찾아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귀가하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인생이 마냥 불공평한 건 아닌 모양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문밖에만 나오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약속된 장소에 당도하기 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으니 길치는 고향에서도 여행자다. 삶 자체가 여행이다. 나도 부부싸움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했(하)지만 길을 나서면 싸움을 멈춘다. 운전할 때는 잉꼬부부도 다툰다는데, 남편이 지름길로 잘 가든, 우회를 거듭하든 조수석에서 어린양처럼 순종적이다. 싸움이란 실력이 서로 비등할 때나 성립하는 게 아니던가. 20년씩 같은 도로를 따라 퇴근해 집 근처로 진입하면서 “동네가 왠지 낯이 익네!” 하기 일쑤니. 사실 나의 핸디캡을 아는 지인들은 수가 틀리면 공공연히 “고려장” 카드를 꺼낸다. 휴대폰 빼앗고 프놈펜 시내에 내버리면 결코 못 찾아올 거라며(크메르어도 꽝이겠다!).
길치에게 광명이란 뭐니 뭐니 해도 튼실한 대중교통망이다. 아직 암흑 같은 프놈펜이지만 대중교통에 대한 계획이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다. 노선버스 운행에 이어 올 쫄츠남 전까지 국제공항행 공항철도 개통을 비롯해 쁘렉 프노브에서 프놈펜과 다끄마오를 연결하는 수상 택시까지 운영한다는 소식이다. 계획을 발표한 교통부장관 성함이 “순 짠돌”이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프놈펜에서 고려장당하는 악몽에선 머지않아 벗어날 듯하다./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