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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캄보디아 추위, 한국 추위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5,6,7) AD 기준 2016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의 일이다. 모든 걸 성(聖)스럽게 보지 못하고 성(性)스럽게 보고 마는 사람 눈엔 “여관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는 구절이 솔깃하다. 그 해나 지금이나 크리스마스 철엔 숙박업소가 극성수기였구나 싶은 것이. 아우구스투스 칙령으로 호적정리를 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고향을 찾아 몰리는 바람에 요셉과 마리아는 산달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 누일 방을 찾아 헤맸을 테고, 요즘은 시즌을 즐기려는 커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사랑을 탐하는 육체를 가릴 방 한 칸이 아쉬운 것일 테고.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도 처한 상황이 하늘과 땅 차이다.
거센 바람에 전깃줄 우는 소리, 털옷 차림에 잔뜩 웅크리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 과연 열대 나라 캄보디아인가 싶다. 갑작스런 한파로 프놈펜 생활 10년 만에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닫고 한국 나갈 때나 입는 긴팔 긴바지를 꺼내 겹쳐 입었다. 일시적인 한파로 프놈펜 최저기온이 사나흘 19도(물경 영상!)까지 떨어진다는 기상 당국의 예보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일반 국민은 물론 국경 주둔군에게 특별히 옷 단속과 건강 단속을 당부했다. 연일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어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대수인가 한다. 오히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올겨울 날씨가 풀리지나 않을까 걱정일지 모른다.
세계 최장기 집권자 훈센이 더 훈훈해 보일 지경이다. 같은 지구촌에 살면서도 사는 지역의 환경에 따라 기후 적응력과 제반 문화가 달라지는 것이다.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경우(case)들의 집합이다”고 말한다. ‘경우’란 ‘놓여 있는 조건, 형편, 사정’을 뜻한다. 물론 그 경우는 모두 우연이다. 살아갈수록 세상이 선과 악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 세상사란 개개인의 처지에서 겪고 느낀 것들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세계는 처지들의 집합이라고 할까. 예전 요셉 마리아 커플과 요즘 청춘 커플, 훈센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은 서로 다른 처지일 뿐이고, 처지가 다르면 해법 또한 다르게 마련이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공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입장에 놓인 사람의 기분이나 2000년 전 핍박받았던 예수의 고통까지 자기 일처럼 공감하는 사람도 있다. 제법 노력은 해보지만 애정과 관심이 가는 층위 외에는 여간해서 공감의 폭을 넓혀가기 힘든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아량이다. 한 인간이 지닌 감수성의 두께가 그만큼 다르다. 부정할 수 없는 건 그 두께야말로 그 사람의 인품이라는 사실. 자기 입장만 고수하는 사람도 있다. 일테면 독불장군. 얼치기 독불장군이야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똑똑한 독불장군에겐 애증이 교차한다. 단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파행을 부르기 십상이라…/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