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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승리의 날은 진정한 승리의 날일까?
1월 1일은 신정이고
1월 7일은 왜 쉬는거죠?
길가에 군인들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죠?
알고보면 더 가슴아픈
캄보디아 근대사 이야기
쁘람뻘 마까라
매년 1월 7일 캄보디아 캄보디아 국민당 당사에서 학살정권에 대한 승리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작년에는 이례적으로 코픽섬에서 대규모 행사를 하지만 그동안 왜 하필 캄보디아 국민당(Cambodia People’s Party) 당사에서 국민당 주관하에 기념식을 열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캄보디아 근대사에 숨어있다.
학살정권에 대한 승리의 날에서 학살정권은 폴포트, 즉 킬링필드의 주동자인 크메르루즈 정권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크메르 루즈, 킬링필드는 1975년~1979년까지 4년동안 폴포트가 농업을 기반으로 한 급진공산주의혁명을 표방해 당시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200만명을 대량학살한 참혹한 캄보디아의 근대사이다. 기업인과 상공인, 친 월남파 등이 무자비하게 학살되었고, 도시민들은 농촌으로의 강제 이주 및 강제 노동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약 8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프놈펜 찌응아엑 대량 학살센터에서 이런 킬링필드의 잔혹한 현장을 생생히 볼 수 있다.
20세기 최악의 사건으로 손꼽히는 폴포트 결말은 1979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군대의 침공으로 막을 내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직 크메르루즈 장교출신이었던 훈센 총리를 비롯한 반군이 이끄는 게릴라군이 베트남군에 합류,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키고 정권을 차지한 날이 바로 1월 7일, 학살정권에 대한 승리의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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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나와있듯이 이 날은 현 정권을 이끄는 훈센총리 입장에서 대량학살의 주범이자 1960년대 동남아시아에서 부강했던 나라인 캄보디아를 몰락시킨 폴포트 정권을 몰아낸 기념적인 날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날은 베트남군이 캄보디아군을 무력으로 무릎 꿇린 굴욕적인 날이기도 하다. 또한 이후 베트남은 캄보디아 내정에 깊숙이 관여하며 치욕의 근대사를 이어갔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아픔 때문에 현재까지도 많은 야당과 진보성향 지식인들은 이날을 ‘국치(國恥)의 날’이라고까지 표현하며 훈센총리와 각을 세우고 현 집권여당을 향해 맹비난을 쏟아낸다.
우리나라도 불과 67년전 민족의 참극 6.25를 겪은 나라다. 캄보디아는 당시 대한민국을 원조하는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였다고 한다. 현 시대의 젊은이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통틀어 봤을 때 지금은 굉장한 축복의 세대라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폴포트가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베트남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캄보디아는 어땠을까?
지나간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선홍빛 피로 물들었던 캄보디아의 아픔이 하얗게 빠지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이 날의 무게를 알고 이해하는 쁘람뻘 마까라가 되기를 바래본다.
/정인솔 정리(참조: “부끄러운 날”…’논란’ 중심에 선 캄보디아 국경일/박정연 기자, 네이버블로그 ‘이토록 아름다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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