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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헐크 돼지
직장상사에 대한 이상형이 각자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식사 시간이 되면 “밥 먹고 합시다!”, 씩씩하게 외쳐주는 사람이다. 당연히 가장 싫어하는 유형은 점심때나 퇴근할 즈음이 임박해서야 “그런데 말이지…”, 마무리 지으려는 일에 토를 달고 나오는 사람이다. 나같이 비축된 체내지방이 적은 축들은 한 끼만 착오가 생겨도 뇌의 에너지 공급에 적신호가 켜진다. 이성이 마비되면서 짜증이 솟구치고 아무리 매력적인 선배라도 반발심이 드는 것이다. G20 회의장의 국가 정상이건, 다리 밑의 노숙자건 공통의 목적은 ‘다 먹자고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음식을 기다리던 기억만큼 오래된 것이 있을까. 유년기 끼니를 기다리다 지칠 때쯤, 들일을 마치고 오시는 길에 대문 어귀 텃밭에 들러 푸성귀를 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장이라도 밭으로 도망갈 것 같이 숨이 덜 죽은 겉절이와 근동의 갯벌에서 잡은 방게장에 새로 빻아 구수한 잡곡밥으로 꾸린 밥상, 내 생애에 다시 마주할 수 있으려나. 남긴 음식들은 알뜰히 모아 쌀겨나 밀겨를 풀어 종일 꿀꿀대는 돼지우리에 부어주곤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네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의 출처는 너무나 자명했다. 현대인은 대형 마켓에 장난감처럼 진열된 식료품을 쇼핑해 식탁에 올린다. 유전자 조작, 화학물질 대량살포, 장거리 수송 등 이윤극대화프레임 속에 생산되는 출생 성분을 알 수 없는 것들.
인류의 식량 확보 역사는 유구하다. 정착 생활과 더불어 야생 동식물을 가축화하고 작물화했다. 그중에서도 돼지는 단연 최고의 동물성 영양원이다. 수많은 야생동물 후보를 물리치고(?) 돼지가 가축으로 채택된 주요 요인은 저가 “식성”과 고속 “성장 속도”에 있다. 사람보다 더 많은 양의 고기를 먹어치우는 사자,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이지만 자라는데 십수 년씩 걸리는 고릴라나 코끼리의 경우와 달리, 아무거나 먹고 빨리 자라는 돼지야말로 사육용 동물로 적격이었다. 효율적인 식량 수급에 대한 궁리가 그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요즘은 탐욕이 지나쳐 성장호르몬, 식욕촉진제, 항생제, 맹독 농약 남용을 일삼는 경쟁적인 저가속성 양식으로 인체는 물론 생태계와 토질 및 수질 환경에 심각한 폐단을 낳고 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그 ‘궁리’라는 게 진화해가는 과정을 보면, “인간의 두뇌는 돼지의 코처럼 음식을 찾는 기관일 뿐이다.”고 꼬집었던 영국 정치가 ‘벨포어’ 경의 인간 본성에 대한 비유가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바야흐로 캄보디아 양돈 농가도 산업화하는 추세다. 자연사료 수급에 힘쓰고 있다지만 사료 값이 비싸 성장호르몬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한다. 얼마 전 캄보디아 한 농장의 ‘헐크 돼지’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도배했다.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근육질인 돼지로 유전자 조작이냐, 성장 호르몬제와 스테로이드 남용이냐를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캄보디아 먹거리 문제, 제도적 보완과 감시가 시급하다./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