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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신격의 건축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우리가 흔히 쓰는 경구다. 유럽 사람들 격언 중에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가 있다나. 나 같은 과잉 염려증은 내일 할 일을 오늘 해치워버리기도 한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잠시 심심풀이하듯 작업하는 캄보디아 직원들을 보노라면 ‘살다보면 일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데, 바로 ‘오늘’이라고들 부르지’ 쯤의 사회통념이 있지 않나 싶어진다. 진지함이나 성실함이 불가촉천민의 증거라도 되는 양 무사태평함이 몸에 배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속담이 다른 걸로 봐서 국민성이란 게 얼마간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캄보디아에 파견 나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수녀회가 많다. 뽀삿주의 그리스도 교육수녀회도 그 중 하나다. 매달 50불씩 쓰레기 회사에 지불하고 한 달 내내 쓰레기 더미에서 돈 될 만한 것을 챙겨 생계를 꾸리는 마을, 그런 처지의 아동을 돌보는 일이 수녀님들 미션이다. 때글은 옷에 언제 씻었는지 악취가 밴 애들 틈에 섞여 먹고 노래하며 율동하는 모습을 보면, 소녀 적 피난처로 수녀원을 떠올리곤 했던 게 턱없이 한가한 발상이었구나 싶다. 정해진 거처가 없어 오랫동안 셋방살이 처지였는데 그간 진행해온 뽀삿 수녀원이 완공돼 입주하셨다. 건축의 요소로 안전성과 효율성을 우선으로 꼽고 그다음 미적인 것을 꼽는다. 아름다움이란 어느 정도 비효율성에서 나오게 마련이고, 안전과 효율의 가치에 비해 잉여 가치쯤으로 여겨져서 그럴 테다. 그럼에도 종교건축에서 ‘동경’을 자아내는 분위기는 중요한 덕목이다. 열악한 지방현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당과 첨탑, 오프닝, 아치, 난간 등 미적인 건축 어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안목이 통한 건축주의 수용이 없었다면 어림없는 일이었으리라.
건축현장에서 이방인으로 캄보디아 인부들과 소통하노라면 비옷을 입은 채 샤워하는 느낌이다. 단번에 마무리되는 디테일이 가물에 콩 나듯 할 수밖에. 수평 수직을 말끔하게 맞추지 못하는 캄보디아 기술자를 보면서 곡선미의 거장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떠올린다. 시에스타 원조 나라가 스페인이듯 무더위 탓에 말단 인부의 시공 완성도가 캄보디아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싶은 것이, 꼬장꼬장한 가우디가 삐뚜름한 직선에 만족하지 못해 아예 곡선을 자신의 설계 컨셉으로 돌려 잡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된다고 할까. 머리 좋은 사람들은 극복할 수 없는 단점이라면 차라리 드러내놓고 활용하는 편을 택하지 않던가. 실제 초기작품은 날렵한 수직 수평선을 강조하는 디자인이다. 어쩌다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남편은 다시 태어난다면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빈둥거리면서 사랑받으니까. 요즘은 캄보디아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빈둥거려도 사정사정하니까. 캄보디아 현장에서 십년가까이 부대낀 회한인지.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가우디가 한 말이다.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캄보디아인은 인격이 아니라 신격임에 틀림없다./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