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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이름
올 추석 시즌에 공휴일이 몰려 연휴가 ‘…금토일월’로 이어진다는 [10월 황금연휴] 보도의 담당 기자 성함이 ‘김토일’이다. 한자로 쓰면 영락없는 ‘금토일’씨. 이름에서 평생 주말처럼 느긋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 마음이 전해진다. 통계청에 의하면 한국 성씨 중 ‘개(介)’씨도 있다는데 기자를 한다면 어떻게 불릴까. 사뭇 난감할 듯하다. 성춘향과 동성인 분을 ‘고문’으로 모실 때보다 더 난감할까 만은. 성씨만 보더라도 인생은 날 때부터 불공평하다. 출석을 가나다순으로 부르던 대학시절 ‘강’씨는 늘 뛰어들어와야 했고 ‘하’씨는 하세월로 와도 됐으니까.
작명도 패션처럼 유행을 탄다. ‘하늘’이니 ‘솔잎’ 같은 우리말이름이나 ‘박차고나온노미세미나’처럼 독특한 이름은 90년대에 유행했다. 요즘은 다시 보수적인 이름으로 회귀했다고 한다. 자식이 미래의 관료가 되었을 때 가볍게 보이는 걸 염려해서 그런다나(‘나 순’장관보다 ‘나 순풍에돛달듯이’장관하면 우습게 보이려나? 세상 부모들의 욕심이란). 우리 자랄 적엔 영호, 영식, 정자, 정숙이라는 이름이 흔했다. 내 주변엔 정숙이라는 이름이 특히나 흔해서 학교에서고 모임에서고 작은 정숙이 큰 정숙이가 있을 정도다. 바야흐로 동명의 대통령 부인까지 맞게 되었다. 모르긴 해도 이 땅에 많은 정숙씨들이 누구보다 즐겁고 뿌듯했으리라.
이름은 통상 성과 이름을 합친 것을 일컫는다. 이름이 ‘이르다(謂)’는 동사에서 파생됐듯이 부르라고 지어졌을 텐데 한국사회에선 가까운 사이에서조차 호명을 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오래전부터 호적에 올리는 정식 이름인 관명(冠名)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것으로 함부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자의 경우 자(字)나 호(號)를 지어 불렀고, 여성의 경우 출가하게 되면 아예 택호(宅號)로 불렸다. 연령, 성별, 직업, 신분의 위계에 따라 확실한 이름을 두고도 어르신, 어머님, 사장님, 장관님…등, 직함이나 비확정적인 호칭을 쓰는 건 오랜 관습 탓인 듯하다. 영미권 영화에선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존(손자), 맥주 한 병 갖다 줘” “로버트(할아버지), 당신이 마실 거잖아? 직접 갖다 마셔.” “네가 냉장고에 더 가깝게 있잖아.” “그렇다면야…” 상하관계를 떠나 자유롭고 논리적으로 대화를 끌어간다. 어떤 면에서 상대와 자기의 서열상 위치를 한시도 잊어선 안 되는 경어체계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확실히 불리해 보인다. 어쨌거나 호칭이란 내가 무게를 싣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남이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다. 명예를 지키기란 그만큼 어려운 노릇이다. 전직 대통령이 ‘503’ 수인번호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재인아 나랑 결혼 할 거야 말 거야?” ‘~씨’도 아니고 그 흔한 ‘~오빠’도 아닌, 얄짤없이 이름을 거명한 솔직 발랄했던 프러포즈가 화제에 올라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을 얻은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에 입성한 후로도 여전히 “유쾌한 정숙씨”로 통하는 모양이다. 죽 그랬으면 좋겠다.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