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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잉여인간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잉여인간이었다. 아들을 고대하시던 조상님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딸, 딸, 딸에 이어 네 번째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밑으로 남동생을 둘 보았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에 2남 2녀가 적당하다싶었던 외할머니께서는 셋째언니와 나를 볼 때마다, “어미 등골 휘게 하는 <예외 것들>”이라며 구박하셨다. 태생적인 것에 대한 차별이 더 집요한 법인지 “우예 껏”이란 할머니 특유의 말에 가시라도 박힌 듯 어린 가슴이 미어지곤 했다. 셋째언니와는 동병상련의 연대감으로 똘똘 뭉쳤는데,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미소와 아부의 처세를 익혔다(뚱하게 사는 거야말로 권력이다). 그러고 보면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 간다”는 옛말이 만고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넷째 딸은 말해 뭐하리.
잉여인간은 뭔가 성과를 냈을 때는 거의 관심을 못 받지만, 딴짓할 때만큼은 놀라운 주목을 받는다. 물론 야단맞는 쪽으로. 자식이 아무리 방탕해도 부모만큼 타락하기는 쉽지 않다는데 옛 어른들은 뭐가 두려워서 그렇게 오락을 죄악시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그 재밌던 ‘만화’와 ‘화투’를 폐가망신인양 금기시해서 만화책은 교과서 안에 끼워서 보고 화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쳤으니. 잉여인간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없거나 자신의 노동력을 화폐로 교환할 수 없는 사람을 일컬으니, 쓸모없는 짓하는 잉여인간이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어린 시절 ‘예외 인간’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는지 잉여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금녀구역이던 당시에 공대여자가 된 것만 해도 그렇다. 누구나 ‘괜찮은 사람’ 이상의 인정에 대한 바람이 있지 않은가. 나이 들어 주제파악을 해서 그렇겠지만 언제부턴가 인정욕구를 버리면 비교나 자책 따위 없이 자유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늘 덜 사랑하는 쪽이 권력자이듯, 칭찬에 연연하지 않는 쪽 또한 권력자일 테니까. 야망을 갖고 목표실현과 자아실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삶도 멋지지만, 그런 자기 착취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마음이 끌리는 일 위주로 사는 자기 방임적 인생도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머지않아 웬만한 노동은 로봇과 드론, 사물인터넷이 하고 인간은 실없이 놀아도 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의 위상을 되찾을 모양이다. 엊그제 뉴스에서 4차 산업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를 그려보였다. 3D업종부터 차츰 4차 산업 신기술이 대체하고 인간은 좀 더 창의적인 일,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토피아가 그리 쉬울까. 인공지능(AI)이 단순노동뿐만 아니라 사무직, 관리직까지 대신하여 인류 대다수를 실업자, 즉 잉여인간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대세는 곧 문화로 이어지곤 한다. 교육, 의료, 기초연금 등, 인류를 건사하는 일은 잘난 소수가 잘해 주리라 호기 있게 가정한다면, ‘역할가치’와 ‘교환가치’대신 ‘유희가치’와 ‘존재가치’가 조명 받게 돼 새로운 르네상스를 꽃피울 수도 있지 않을까. /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