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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무협지에서 배운 교훈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 참 단순하고 묘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학자들이 좋아하는(?)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말로 포장되어 있는 추상적인 것들이나 ‘영적인 세계’ 조차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너무나 쉽고 일상적인 것도 꽤 많습니다.
얼마 전 시시콜콜한 무협지를 읽다가 횡재를 했습니다. ‘걸인각성’이라는 거지가 되어 살아야 하는 정말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책인데 빌린 책이라 그냥 반납하기가 아까워 억지로 눈 비비며 보다가 주인공이 후배 거지에게 밥이란 이곳저곳에 많이 버려져 있으니 잘 살피라며 하는 말 “밥이란 진리와 같아서 고개를 숙이고 보지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정말 이래서 진리의 필(feel)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에게 “밥이란 진리와 같아서 고개를 숙이고 보지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다”라는 이 말은 이제까지 배우고 익힌 수십년 동안의 학습보다 더 쉽고 정확하게 진리의 본질에 접근하도록 해주었고, 좀 심하게 말하면 그동안 알 듯 모를 듯하던 삶의 방법, 인간의 자세, 신앙의 길…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마치 호텔 방에 들어가서 카드 키를 끼우면 불이 갑자기 밝혀지는 것처럼, 저의 눈과 머리를 정리해 주어 버렸습니다.
밥을 얻으려면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아야 되듯이 인생의 진리 또한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자신의 몸을 낮춰야 보인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진리란 아주 고고한 학문이나 사유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보편적인 삶에, 일상적 삶에 녹아 있으며 자기 중심, 자기 오만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보여지지도 찾아지지도 않는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겸손하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이 빳빳하면, 그래서 아래를 보지 않으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이라는 땅에서 자라나지 못한 사랑나무는 금세 말라 비틀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해도, 이 세상이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것은 그가 이 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밥 한 덩이를 얻으려 해도 스스로 고개를 숙여 이 땅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막연히 이 세상의 아픔이 무엇일까 아무리 책에서 찾고 성인의 말을 되씹고 한다해도, 그것을 알아내려 온갖 노력을 한다해도 스스로 고개를 숙여 보지 않으면 절대로 찾아 낼 수 없습니다. 진리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와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고개 숙여 겸손하게 이 세상을 보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 정 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