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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꿈
일이 손에 익은 가사도우미가 들릴락 말락 콧노래와 함께 세간살이를 건사해 집안 가득 은은한 비누냄새가 나고, 이상한 얘기에도 이상해하는 법이 없는 친구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나섰다는 전갈이 오고, 오래 공들인 프로젝트가 인허가 절차마다 순조롭더니 마지막 결재만을 앞두고 있어 드디어 착공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인생이 이렇게 굴러가면 얼마나 좋을까만, 해가 갈수록 느느니 요령인 가사도우미는 항공 캐리어를 꺼낼 때 외엔 즐거운 기색이라곤 없고, 누가 건드렸는지 해묵은 앙금이 도져 다퉜으련만 친구들은 못 가겠노라며 각자 속보이는 핑계를 대오고, 윗선까지 가서야 멀쩡하게 등기 난 대지로 관통하는 도로계획이 드러나 프로젝트가 무산위기에 처해지고(실제 캄보디아 도시계획은 열람불가의 경우가 많다)…, 보통사람의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어쩌다 아들 녀석이 최근 들어 읽은 소설을 뒤따라 읽게 되었는데 ‘꿈이란 말이죠, 깨라고 있는 거잖아요’에 밑줄이 좍 그어져 있었다. 같은 책이라도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따라 끌리는 부분이 변하기도 하고,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따라 밑줄 긋는 부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삼포, N포, 희망 없는 세대라 불리는 이 시대의 청년으로 졸업을 앞두고 학점관리다 취업준비다 나름 고비를 맞고 있는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에 내 마음 또한 머물렀다. 레이먼드 커버의 단편 <굴레>의 한 대목이다. 고등학생시절 상담실에 불려가 ‘너는 꿈이 뭐니?’, ‘십 년 뒤에 네가 어떤 모습일 것 같니? 이십년 뒤에는?’등의 질문을 받았을 때, 꿈을 이룬 사람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이는 늙다리 상담선생님의 모습에 차마 아무 대답을 못했는데(‘너나 잘 하지 그랬어요?’ 쯤의 심리가 발동하지 않았을까), 세월이 흘러 그 선생님처럼 역시나 한심한 처지가 되고 보니 꿈이란 깨라고 있는 것이었다, 대충 이런 맥락이다. 누구나 강조해마지 않는 꿈을 좇아 아등바등 살아본들 그 모양 그 꼴을 못 면하지 않느냐는 자조가 깔려있다고 할까.
얼마 전 프놈펜포스트에 6살 여자애의 귀걸이가 탐나 살인을 저지른 25세 남자에 대한 기사가 났다. 무자비하게 구타해 목걸이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물에 빠져 죽은 것처럼 유기하고 도망쳤다. 결국 체포돼 범행일체를 자백했는데 값비싸고 멋져보여서 강탈했다던 그 귀걸이가 한 쌍에 겨우 0.6달러에 불과한 거였다. 이게 사람인가 싶으면서도 잠깐 사이에 무너질 수 있는 게 또한 사람이지 싶어진다. 오바마 같이 꿈을 이룬(?) 사람조차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던가, ‘부서지기 쉬운 인생’.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들과 정해진 자원을 두고 끊임없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모순된 세상살이, 그저 그런 자리하나 보전하느라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꿈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꿈과 자긍심은 많은 부분 겹칠 테다. 인류역사가 그나마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고통스럽게 진보 쪽으로 움직여나가는 건 어차피 깨질 꿈일지언정 꿋꿋하게 지니고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덕이 아닐까(자슥아, 힘내!).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