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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홍콩(香港)
“홍콩 갔다 왔다”고 얘기하면, 나이든 세대는 대뜸 야릇한 상상부터 하고본다. ‘홍콩 간다’는 말의 유래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신세대는 알 턱이 없다. 남북이 대치하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 탓에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그나마 왕래가 가능했던 곳이 홍콩이었다. 너나없이 궁핍한 살림살이에 특권층이나 누렸던 환락의 별천지 홍콩 여행이 서민에게는 로망 그 자체였는데, “오빠가 오늘밤 홍콩 보내줄까?”라는 한 영화의 베드신 대사와 함께 성적인 의미로 굳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그 옛날 오빠나 지금 오빠나 욕망의 문제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을 테지만, 요즘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적잖은 성인남성이 성추행범으로 처벌받을 게 분명하다. 문명화과정에서 보호영역이 커지는 축이 있는가 하면 정상인의 범주가 갈수록 줄어드는 축도 있는 듯하다.
홍콩은 건축가라면 한번쯤 가볼만한 도시다. 면적은 서울의 1.8배에 인구는 720만 정도지만 도심의 체감인구밀도는 세계제일로 건축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한 홍콩센트럴의 마천루 숲을 보노라면,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건축은 그 사회를 반영하게 마련이라 내로라하는 건물 대부분 뿌리 깊은 홍콩 사회의 풍수사상에 입각해서 지어졌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아시아의 금융과 물류 허브이자 쇼핑 메카인 첨단 도시에서 건물을 설계할 때 건축가와 의뢰인, 풍수사 간 견해가 다를 경우 대게 풍수사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이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Noman Foster)가 설계한 홍콩 상하이은행본사(HSBC)는 건물이 용의 길을 막는다는 풍수사의 조언에 따라 금싸라기 땅에 1층 전체를 뚫어 일반인의 통로로 내주었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아이오 밍 페이가 설계한 중국은행타워(Bank of China Tower)는 홍콩의 강한 음기를 누르기 위해서는 남성적인 칼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게 좋겠다하여 칼 모양으로 디자인됐다. 미국 건축가 폴 루돌프가 설계한 리포센터(Lippo Centre)는 쌍둥이 빌딩으로 숫자 ‘8’을 반영하여 8각형을 모티브로 했다. ‘8’은 발음 ‘파’가 ‘파차이(發財 돈을 벌다)’의 첫 발음과 비슷해 홍콩사람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8자 빌딩을 쌍으로 세워놓았으니 더 말해 뭐하리.
현란한 홍콩의 외피와 달리 이면으로는 고도로 발달시켜 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피로가 감지됐다. 특히나 꽉 짜인 시스템에 절망적로 몸을 맞춰 넣으려는 노인들의 모습이란. 손자 재롱이나 봐야할 노장들이 페스트 푸드점 점원으로 일을 하고, 시골 요양원에나 어울릴 법한 노구를 이끌고 도로에서 비질을 하고 전단지를 돌리고…, 고령화의 그림자가 짙다. 홍콩이 중국에 편입된 건 진나라의 진시황 때로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권이다. 공자는 그 나라의 정치가 잘 되고 못 되고의 여부, 앞날이 있나 없나 여부는 튼튼한 성새(城塞)나 유복한 생계가 아닌 저자에 등짐지고 다니는 노인이 있나 없나가 판단 기준이라고 했다. 자꾸 건물은 높아지고 기대수명 또한 나날이 길어지는데…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