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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냉장고로 들어간 인심
<강아지를 고문하여 코끼리라는 자백을 받아낸 다음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박정희 시대 버전이다. <“이 썩을 놈아!” 코끼리 비위를 살살 긁어서 “내가 왜 썩어!” 스스로 냉장고문을 열고 들어가게 만든다.> 가장 최신 버전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불가능한 일에 대한 풍자로 오래 회자됐다. 요즘 가정용 냉장고 추세로 보건대, 과장을 좀 보태 실제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태세다. 노트북, 카메라, 휴대폰 등, 대부분 소형화를 추구하는 현상과는 대조적이다.
현대식 냉장고의 냉동기술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개발되었다. 가정용 냉장고는 미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최초의 냉장고는 1925년 제너럴 일렉트릭사에 의해 출시됐다. 한국에선 1965년 금성(현 LG)에서 처음 만들어 선 보였다. 이곳 캄보디아는 냉장고가 아직 특수층의 전유물이나 머지않아 서민 가정에까지 보급될 듯싶다. 지금은 얼음을 채워 냉각시키는 스티로폼 아이스박스가 대유행이다. 헬멧을 녹일 듯한 땡볕아래 거리를 누비는 얼음배달부, 오토바이 뒤의 얼음덩이가 녹아내려 도로에 물금을 긋는다. 결재는 출발부피로 할까, 도착부피로 할까.
중세 유럽 수도원은 문명발생지이자 문명전파지였다. 공동체 협업에 의한 최초의 전문 수공업과 집약 농업도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풍속의 역사에 따르면, 수도사들은 생산품을 수시로 성 밖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화폐가 통용되면서부터 그런 자선활동이 급격히 줄었다. 잉여생산물을 처분하여 돈으로 쌓아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등장한 이후에는 먹거리를 나누는 일조차 뜸해졌으리라. 깊은 우물속이 유일한 냉각시설이었던 우리 어린 시절, 뉘 집에서 가축이 갑자기 죽을 때면 동네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대개의 선행이 그렇듯이 상해서 버릴 바에야 이웃에게 선심이라도 쓰고 덕분에 한바탕 놀아보자 싶었던 것이다. 화폐의 발명으로 부의 무한축적이 가능해졌고, 냉장고의 발명으로 식품의 장기 보관이 가능해졌다. 나누는 삶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 환경운동가 ‘마이클 폴란’에 의하면, 진짜음식이란 ‘증조할머니가 아는’ 음식이다. 국적불명의 바이러스와 식품첨가제로 오염된 먼 나라 냉장식품이 아닌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나는 음식이 최고라는 의미일 테다.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에게 신토불이의 정체성이란 묘연한 것이라서 고국에서 공수해 온 식품과 이곳 캄보디아 식재료까지 합쳐져 우리 집 냉장고는 늘 공간이 부족하다. 냉장고가 없는 캄보디아 서민들은 봉지 밥, 봉지 반찬 같은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일쑤다. 저녁 어스름에 장을 봐서 귀가하는 프놈펜 아낙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생선 두세 토막에 야채 한두 뿌리씩, 우리네 장보따리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그날그날 조리해 먹여야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구석이 많겠지만 대형냉장고를 갖춘 축보다 훨씬 신선한 요리를 즐길 터이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나 고양이에게 기꺼이 인심도 쓰면서.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