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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신죽부인(新竹夫人)
요즘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는 꿈을 꾼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 잠이 깨곤 한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갈증이 가시지 않아 맥주라도 들이켜고 잠 든 날이면 칼바람을 헤치며 화장실 찾아다니는 꿈을 꾼다. 겨우 찾은 화장실마다 문이 고드름 덩어리에 싸여있어 결국 잠이 깨고 만다. ‘꿈속에서 더 이상 화장실문이 열리지 않게 되는 시점’부터 성년으로 봐야하는 게 아닐까(영락없이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던 유년기를 돌이켜 보시라). 열대야의 원조인 캄보디아에 살면서 꿈이라도 웬 호사냐 싶겠지만, 이게 다 밤새 에어컨을 가동하기 때문이다.
옛날엔 에어컨 같은 문명의 이기는 없었지만 운치는 더했던 듯하다.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는 친하게 되었네 / 비록 다소곳이 밥상 시중은 못 들지만 /…조용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드네…” 고려 후기 문인 이규보의 시 <죽부인(竹夫人)>의 한 대목이다. 한여름 밤에 죽부인(竹夫人)을 끼고 누워 더위를 달래던 풍류를 읊었다. 그 시절에도 마누라의 바가지는 어지간했나보다. 죽부인이란 가늘게 쪼갠 대(竹)를 엮은 것으로, 안고 자기에 적당한 크기의(길이 106, 지름 20.3)원통형 침구다. 여름철 잠자리 더위를 식히기 위해 사용되는데, 대나무 특유의 서늘한 표면에 속이 비어있어 통풍성이 뛰어나다. 죽부인(竹夫人)의 ‘夫人’은 자신의 아내를 뜻하는 ‘婦人’과 달리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상향의 외간 여자를 의인화해 침실로 끌어들였다고나 할까. ‘죽부인(竹夫人)’만 있고 ‘죽부군(竹夫君)’은 없어 불공평하다 싶겠지만, 안방마님용으로 ‘죽노(竹奴)’라는 게 있었다. 양반집 마님들이 건장한 노비에게 품는 성적 로망이 반영된 이름이라나.
죽부인은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등지의 동남아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사랑방에 기거하는 선비가 사용했는데, 살이 맞닿지 않게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양 팔을 둘러 함께 눕는다 해서 죽부인이라 칭했던 모양이다. 이런 범상치 않은 이름 덕분에 부자나 형제간에는 돌려쓰지 않았다. 친구 집에 하인을 보내 죽부인(竹夫人) 좀 빌려오라고 시켰더니 무식한 하인이 대부인(大夫人-남의 어머니)을 빌려달라고 했다는 옛날 고리짝 우스개로 보건대, 친구끼리는 돌려쓰기도 했던 모양이다 (역시 친구란 못된 짓을 함께하는 사이다).
바야흐로 신소재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납량 물품, 즉 ‘신죽부인(新竹夫人)’ 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부실한 체력 탓인지 비인간적인 기기 탓인지, 에어컨 온도를 가장 높게 맞춰놓아도 추워서 깨기 일쑤다. 전원을 끄거니 켜거니 하느라 자다 깨다를 반복해 불량수면이 되고 만다. 끌어안았을 때 시원 말랑한 인간에어컨 같은 그 ‘무엇’, 춥다 싶으면 잠결에 슬쩍 밀쳐내면 그만인 그 ‘무엇’이 기대되는 요즘이다. 천연라텍스로 만든 죽부인이 나와 있긴 하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겨울철에 쓰는 휴대용 ‘손난로’와 반대되는 개념의 물품이라면 그 옛날 죽부인을 능가하지 않을까.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