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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오토바이 한 대로 몇 명을 태워 나를 수 있을까? 두 몇? 세 명? 아니면, 다섯 명? 다 맞다. 열 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캄보디아에서는 그렇다. 오토바이 한 대로 스무 명이 넘는 인원도 실어 나르니까. 출퇴근길에 프놈펜 근교 공장 지대에 가서 보면 오토바이 뒤에 긴 수레를 매달고 그 위에 스무 명 이상의 공원들을 싣고 달리는 르목을 흔히 볼 수 있다. 수레 위에 널빤지를 가로로 얹고 한 줄에 서너 명씩 수십 명이 앉아 차도를 씽씽 달린다. 중형 버스 한 대가 할 일을 오토바이 한 대가 하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오토바이가 하는 일은 단지 개인용 이동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요금을 받고 목적지까지 실어다 주는 택시 역할도 하고, 뒤에 승차용 수레를 달아 한 번에 대여섯 명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짐을 실어 나르는 일도 대부분 오토바이 몫이다. 툭툭이나 르목으로 쓰이는 오토바이에는 물통이 하나씩 실려 있다. 그리고, 거기에 호스를 연결해서 오토바이 엔진 위로 항상 물방울이 떨어지게 해 놓았다. 과부하에 따라 발생하는 엔진의 열을 식혀 주는 장치다. 중고 엔진의 역랑을 최대한 높여 쓰고자 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자동차들이 캄보디아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다. 대표적인 것이 봉고차 같은 승합차다. 칠이 벗겨지고 찌그러지다 못해 일부가 삭아 내린 차들이 정원의 두 배 이상 승객을 태우고 거기에 지붕과 뒷문 밖까지 짐을 가득 싣고 도로를 달린다. 승객이 다 찰 때까지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이용한다. 노선버스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하기도 하지만 차비가 싸서 그렇다. 저렇게 낡은 차가 어떻게 굴러갈 수 있을까…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고장이 나도 당연히 새 부품이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요리조리 잘 고쳐서 쓴다.
바비큐 식당에 가면 식탁 위에 의례히 휴대용 가스버너가 올라온다. 그 위에 불판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런데 가스가 떨어져 가스통을 바꿔 달라고 할 때 은근히 겁이 난다. 가스통이 온통 녹이 슬어 있어서 불을 붙일 때 혹시 터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는 쓰고 버린 빈 통에 가스를 충전해서 다시 쓴다. 한국에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것들이지만 여기서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다시 쓴다. 이런 가스통 대부분이 한국에서 수거해 들여 온 것이라고 한다.
한때 한국의 중고 옷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한국의 하절기나 봄가을에 입는 옷들을 여기저기에 펼쳐 놓고 팔곤 했다. 비록 한국에서는 버려진 옷들이지만 질이 좋고 값이 싸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즐겨 사 입었다. 티셔츠나 청바지 같은 옷을 많이 찾았다. 중고 물품 중에는 신발이나 가방도 끼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중고 전화기 판매점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들여온 중고 휴대폰을 수리하고 손질해서 진열해 놓고 파는데, 새 휴대폰을 찾는 사람보다 중고 휴대폰을 찾는 사람이 월등히 많다.
자동차건 오토바이건 스마트폰이건 중고가 이렇게 대접 받는 나라가 캄보디아 말고 또 있을까? 한국에서는 오래 전에 폐차가 됐을 차량이 여기서는 상당한 가격으로 거래된다. 겉만 보면 새 차 같은데 십 년 이상 된 차가 수두룩하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서 잘 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중고가 판치는 캄보디아에 딱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