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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이 보는 세상] 나눔이 간을 만든다
캄보디아는 양력 4월이 되어야 새해가 시작되건만 큰 도로마다 벌써 ‘Happy New Year’ 구조물이 장엄(莊嚴)되어 있다. 그러니 참 싱거운 사람들이다 싶은데 우리말에서는 키가 크면 싱겁다는 표현이 있다. 반면 고추는 작을수록 맵다며 단구(短軀)의 힘을 강조하기도 하므로 작으면서 싱거운 사람들은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문득 궁금하다.
음식물의 짠 성질 위주 중심 요소를 ‘간’이라고 부르는 바 이게 입에 착 감기지 않으면 그 음식 먹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흔히들 캄보디아 불교를 소승이라 폄하(貶下)하기도 하는데 상좌부 불교라 부르는 게 바람직하며 여기 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자신들 불교를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충실하다는 뜻으로 근본불교라고도 칭한다. 초기 불교가 나뉘는데 있어 발단이 된 사건 중의 하나가 간의 문제였다고 들은 적이 있다.
부처님 입멸 100년 쯤 지나서 한 무리였던 수행자들은 계율을 어긴 10가지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그 첫째로 지적된 사항이 소금을 저장하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원시 불교에서는 철저하게 걸식(乞食)을 하였기에 그날 빌어 그날 먹을 뿐 뒷날을 위해 저축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런데 소금이 말썽이었다. 빌어먹는 음식의 간이 맞기는 어려운 법, 그러니 소금 정도의 비축도 막는 것은 부처님의 본뜻이 아닌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한 쪽에서 소금의 저장을 주장했으리라. 아무튼 간이라는 사소한 안건이 분파(分派)를 야기(惹起)한 큰 문제 중의 하나로 작용한 것은 역사 속 분명한 팩트로 보인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어른의 한 분인 어떤 스님이 인도 북부 부처님 성도(成道) 전의 수행터로 알려진 전정각산 밑 둥게스와리 불가촉 천민촌에 학교를 세웠다. 인연이 되어 서너 해 전 한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오늘날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한 곳이다. 들어서기 무섭게 구걸 행렬이 겁나게 달려드는데 구걸의 도를 넘어 강탈하는 자들이 종종 있어서 해가 지면 관광객을 서둘러 내보내는 것으로도 알려진 고장이었다.
그 부근을 비롯해 대표적인 초기 불교 유적지들이 산재한 비하르 주는 1월 아침에는 꽤 추웠다. 두꺼운 파카를 입고서도 떨리는 새벽 추위에 골목길을 걷노라면 어둠 속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헝겊 덩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게 사람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비하르 주에 있는 국제공항 이름이 가야여서 한국인인 나에겐 뜻밖의 친근함으로 다가왔었다. 내가 갔던 해는 망명 중인 달라이라마가 불교 성지 붓다가야에서 티베트 불교의 중요 행사인 칼라차크라를 집전하던 때여서 군중이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공항에서 목적지까지 이르는 길의 혼잡도 혼잡이려니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탈것들이 한꺼번에 굴러가는 모습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3차선 도로면 5차선을 예사로 만들어 틈을 메우던 카이로에서도 운전을 해본 경력이건만 인파(人波)와 다종다기(多種多岐)의 탈것이 씨줄 날줄 되어 도로를 메운 여기라면 도저히 핸들을 잡을 수 없겠다 혀를 내두른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의 기억들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인도를 떠올리면 불편한 마음을 억제하기 어렵다. 아무리 카스트가 온존(溫存)한다기로서니 같은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무수한 거리의 삶들을 방치할 수 있는가. 그에 비하면 프놈펜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해먹 위의 삶과 영업용 택시를 숙소 삼는 ‘툭툭이 하우스’는 얼마나 정겹고 인간다운 느낌을 주었는지 모른다.
며칠 전에는 오후부터 사뭇 어둘 무렵까지 제법 굵은 빗줄기가 프놈펜을 적셨다. 교민 분들에게 물으니 여간해서는 이 즈음에 보기 힘든 일이라고들 했다. 기후가 변하는 증거일 수 있고 그러기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었던 것이라 짐작한다.
기후며 강산조차 변한다지만 인간에게는 변치 않아야 할 게 있어 꼽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말 꺼내기 무색하게 그렇게 살아오진 못했으되 그 핵심의 하나가 ‘나눔’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해 벽두(劈頭)에 나눔의 화두(話頭)를 조심스레 들려드리는 것이다.
나눔에 대해 생각할 때 곧잘 부자들을 떠올리며 그들이나 가능한 것이라 생각함이 새천년 한국인의 상식인 듯하다. 아마도 지구촌 최고 체감 수준일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살다 보니 그러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것 아닐까.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당시 내 주변엔 글재주로 날고 기는 친구들이 많았다. 글이란 저런 이들이 쓰는 것이로구나 싶으며 일찌감치 쓰는 일을 접었다. 그러던 나를 글 쓰는 존재로 만든 것은 착하면서도 저력 있는 국민들의 나라인 미얀마였다. 그곳에서 생활한 경험을 나누려는 마음이 부끄러움을 이겨내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재주 없을지라도 쓰는 행위가 나의 생각을 나누는 요긴한 나눔 실천 될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계속하고 있다.
말이 반도(半島)이지 북한을 외국으로 본다면 깔축없는 섬나라인 대한민국이다. 그 조그만 나라가 경제 10위권에 육박한다는 건 자랑 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행의 정도가 이렇게나 강한 것은 무엇보다도 나눔에 인색한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구세군이나 부자들의 온정이 희망이 아니라 어느 대통령이 자주 썼던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나눔이 희망이다. 그리고 그 나눔의 대상은 재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있는 현장에서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눌 수 있으면 우리는 이미 부자이다.
제목의 ‘간’은 사실은 인간(人間)의 간(間)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인들이 사람을 인간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관계를 제쳐두고 인간다움을 논할 수 없다는 점을 안 그들의 탁월한 시선이었다. 나는 그것을 음식에 있어 간과도 맞먹을 만한 위상과 중요성이 있다고 보아서 연결한 것이다.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요체(要諦)는 관계[間]이며 그것을 원활하게 만드는 윤활유가 바로 나눔이다. 또한 그 대상은 읽은 책, 함께 본 영화, 나를 성장케 한 여행 또는 봉사활동 등 뜻만 있다면 얼마든지 ‘쉽게 가능한’ 일들인 것이다.
앞에서도 적은 것처럼 인도에 가면 기부를 뜻하는 ‘박시시’를 외치며 달려드는 어린이들이 많다. 위의 스님 역시 인도 어린이들의 박시시 공세에 무척 시달렸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한번은 장난삼아 발우를 꺼내어 녀석들 앞에 내놓으며 “박시시” 했더니 놀랍게도 자신들 구걸로 얻은 귀한 푼돈을 나눠주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피를 나눈 혈육에게 한푼도 줄 수 없다 했다던 어느 기업인을 슬쩍 언급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디이며 지옥은 어디인가. 신년 아침 차분하게 자리하고 앉아 가만히 헤아리면 우리에게 나눌 무엇이 없는 게 아니며 한국 사회가 ‘헬조선’을 벗어날 ‘어렵지 않은’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한유일(교사 ; shini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