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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양김 시대는 저물고…
6, 70년대는 동네 공터가 유일한 놀이터였다. 땅따먹기나 구슬치기 게임도 했지만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기도 했다. 일테면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 기능이 실현되는 오프라인 현장이었던 셈이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 트로이카가 은막을 누비던 한국 영화의 황금기로 영화 관람을 최고 호사로 치던 때였다. 따분한 일상의 여자애들에게 사랑에 웃고 우는 여배우가 큰 로망이었는데, 서로 좋아하는 배우가 최고라고 우기다가 싸우기 일쑤였다. 머리채를 잡는 막장을 연출하기도.
동경의 대상을 찾는 게 보편 심리인지, 그 아이들이 자라 유권자가 되어서는 두 스타 정치인을 두고 애정 경쟁을 벌였다. SNS 같은 정보망도 없던 시절 100만 군중을 거뜬히 동원했던 ‘김대중’, ‘김영삼’이 그 주인공이다. 때로는 동지로 때로는 라이벌로 민주화 투쟁의 선봉이었던 그들의 행보는 ‘박정희’가 대통령의 대명사로 굳어가던 시절에 민중의 신선한 해방구였다. 인터뷰할 때 김대중은 “첫째, 둘째, 셋째…” 조목조목 꼽으며 논리정연하게 답변하지만, 김영삼은 “내가 뭘 아나. O기자가 알아서 써주게” 한다는 둥, 기자에게 촌지를 줄 때도 김대중은 돌아서서 하나, 둘, 셋… 돈을 꼼꼼히 세어 건네는가 하면, 김영삼은 “아나, 이거 후배들 술 사줘라” 얼마가 됐든 지갑 째 안겨준다는 둥, 언론에서는 양자 간 차이를 끊임없이 부각시켰다.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술자리 주 가십거리였고 열성 지지자가 끼면 멱살잡이로 이어지곤 했다. 꿈에 그리던 직선제를 이끌어낸 87년 대선에서 야당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양김이 독자 출마하여 여당과 겨루게 되었을 때, 정치에 무심한 사람들까지 지역별 유권자수와 후보별 우세지역을 분석해가며 밤새 개표과정을 지켜보았다. 양김의 참패는 국민에게 깊은 배신감과 상처를 주었고 차후 모든 선거에 지역 구도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YS가 DJ와 6년의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목숨 걸고 쌓아올린 민주화 공적을 권력욕에 눈이 멀어 당사자들 스스로 와해시킨 일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대인배 정치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3개 식민지주의 오합지졸을 이끌고 유럽 최강 영국 정규군과 맞서 미국독립을 쟁취한 후 미련 없이 군권을 내려놓고 귀향했다. 인재를 썩히기 아까웠던 미국인들은 그를 추대했고 1789년 만장일치로 대통령이 되어 대통령 임무 또한 모범적으로 수행했다. 미국 법 어디에도 대통령 연임횟수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워싱턴은 2차 임기를 끝으로 미련 없이 물러났다. 미국이 개국 이래 독재자 없이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에 조지 워싱턴의 공이 가장 컸다는 데 이견이 없다.
뻔뻔함을 미덕으로 쳐주는 세상 탓인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나 서푼어치도 안 되는 권력이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꼼수가 점점 기승을 부리는 듯하다. 그 옛날 공터에서 쌈박질하던 애들이 떠오르는 게 어른이란 사람들이 그저 덩치 큰 어린아이일 따름이라는 느낌이다./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