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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독해의 날
얼마 전만해도 캄보디아에 귀한 물건이 많아 고국나들이라도 가게 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물자조달에 대한 부탁을 받곤 했다. <남창큰모, 면목없는양말…> 급하게 메모해온 글자를 해독하기 어려워 고심했던 적이 있다. 자기가 쓰고도 몰라볼 정도로 악필인 주제에 줄여 쓰기까지 했으니. 적을 때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처럼 자신만만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허술한가. ‘남창큰모’, 뭔가 야릇한 느낌이지만 공사장에 있는 남편의 부탁인지라 금방 눈치 챘다. ‘남자용 챙이 큰 모자’렷다. ‘면목없는양말’이라. 정말 면목 없는 세상에 양말 따위가 무슨 면목타령이람. 한참 머리를 굴린 끝에 캄보디아에 제대로 된 면제품이 없다는 점을 떠올려 ‘면(綿)으로 된 목 없는 양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예가 조금 비약됐지만 원칙에 어긋나면 자기 글에 대한 독해도 어려워지는 법이다.
문맹률이 높은 캄보디아에서 이방인으로 사노라면 문서 해독 문제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한글의 두 배가 넘는 자모에 띄어쓰기마저 없어 난해한 축에 속하는 크메르 문자체계 탓인지, 상당한 전문지식을 갖춘 캄보디아인조차 해석이 엇갈리기 일쑤다. 부끄럽게도 까막눈으로 사는 처지라 자세한 건 모르지만 문서자체의 오류도 흔한 모양이다. 불분명한 정보에 해석마저 제각각이니 적절한 후속 조치가 따를 리 없다. 오류와 오독이 이어져 헛발질하는 일이 다반사라 국가 전반의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아무리 영상시대라지만 문자 해독력은 여전히 우리 생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깨알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단 한 컷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영상의 힘은 막강하지만, 생각이나 감정은 물론, 논리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사상이나 규약 등을 전달하는 데는 문장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캄보디아 정부가 성인 완전 독해율 50%를 목표로 ‘독해의 날’을 정했다는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독해력은 독서량에 비례하게 마련이다. 서적이 언제부터 교양과 지식의 보고로 인식되었는지 모르지만 책만큼 유구한 오락거리도 드물다. 요즘 인터넷이나 게임 역할을 그동안 책이 대신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 오는 밤, 문을 닫아걸고 금서(禁書)를 읽는 것이 인생 최대의 기쁨’이라고 중국 문예비평가 김성탄이 말했듯이, 내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선데이 서울’(가문의 금서)을 꼽겠다.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이상성애, 치정, 불륜…, 인간의 민낯을 훔쳐보는 짜릿짜릿한 재미에 나를 다락방으로 숨어들게 했을 뿐 아니라, 올곧은 유신소녀를 세속에 눈뜨게 했으니. 다행히 ‘선데이 서울’에 머물지 않고 ‘마르크스’를 읽기도 했는데, 글을 쓰다 생각이 막히면 서재를 어슬렁거리던 마르크스의 버릇으로 인해 그의 서재바닥 카펫이 한 줄로 닳아 마치 초원의 오솔길처럼 길이 나 있었다는 데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토록 오랜 세월 천착한 결과물을 이렇게 헐하게 취해도 되는 건가 싶은 게. 죽은 남자에게 연애감정씩이나 느끼다니, 내 독해력이 지나치게 나아간 건 아닌지.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