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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이 보는 세상] 한드 최종회
캄보디아는 오늘도 변함없이 한국의 한여름 날씨를 선사한다. 우기가 끝물로 접어들며 이른 아침부터 ‘햇볕은 쨍쨍’을 연출하는데 내 머릿속에는 반짝일 모래알은 없어 그저 멍할 뿐이다. 아마도 이 나라의 처지에 맞게 변화하려면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해외 뉴스 채널들은 오랜만에 한국 관련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어서 반가웠다. 누구라도 가슴 먹먹할 이산가족 상봉 장면인데 주빈 상당수가 90 전후의 고령자들이었다. 이를 보건대 그간 멀어졌던 간극(間隙)을 좁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민간 교류가 시급하다. 차근차근 신중을 기하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닌가 싶다. ‘통일 대박’은 순식간의 통합을 뜻할 수도 있겠으나 이와 같은 교류가 정례화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박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자면 서로에 대한 긍정과 인정이 필요할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보수적 사고방식에 오랫동안 젖어온 터이라 북쪽의 사고에는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을 용인하지 않고서 통일을 이룬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경제적 요인은 자신감의 큰 요소인데 이미 오래전에 비교조차 의미 없을 만큼의 경제 우위를 점한 남쪽 입장에서라면 북의 사상이 우리를 잠식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역사 속에서는 가야의 사상을 용인(容認)한 신라의 통일이 최근의 한반도 상황에 비근(卑近)한 모범 사례라고 전문 연구자들은 말한다.
사상이 범죄가 되어 스무 해를 감옥에서 보내고 그곳에서의 사색을 책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펴낸 분이 있다. 그는 감옥에서 고뇌와 사색을 통해 인간성이 ‘개조’되는 경험을 한다. 하층 기층민들과 노동으로 함께 부대끼며 이루어낸 일이기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가득 했다.
그는 그리하여 감옥의 삶은 자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참된 ‘나의 대학시절’이었다고 고백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이 고통뿐의 감옥 생활을 보람으로 바꿔준 자부심과 신념이었다. 그런데 출소 후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이 하나같이 “너 조금도 안 변했다”고 말해 그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그 말이 위로의 정서를 담기 위한 것이었음을 읽어내고는 자기 개조의 ‘성취감’을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간직하고 내심 당당해한다.
그러던 어느날 유명 일간지의 제의로 해외 여행기를 연재하는 도중 우크라이나에 가게 된다. 전승기념탑을 찾는 과정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는 여자 동상이 전승기념탑인 것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완전군장한 군인들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자 자신 전승 관념의 천박성을 간파하는 동시에 인간 개조의 어려움을 통감한다. 그는 기획자에게 ‘내게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마라’는, 아프고도 아쉬운 깨달음을 담은 내용의 메일을 보낸다.
변화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천성은 못 고친다거나 사람이 변하는 건 인생 종칠 때나 되어야 가능하다는 속언조차 생긴 것이리라. 같은 맥락에서 ‘생긴대로 살다 갈 테니 내비둬’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한 표현들이 있다는 건, 역으로 인간에게는 그만큼 보다 나은 인간으로 바뀌고 싶다는 열망이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요즘 한국 여러 서점들에서 베스트셀러 목록 1위를 거의 휩쓸고 있는 책은 그러한 열망을 잘 보여준다. 사람이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제, 즉 하고 싶은 일에 착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책은 말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컨대 과제를 이루려면 남들이 인정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 미움을 받더라도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놈펜에 앉아서 갑자기 서울 유력 책방들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언급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갈수록 남의 일에 끼어들어 참견하고 비난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그로 인해 다른이들이 생을 마감하게까지 만드는 일들이 빈번한 조국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먼 타국의 백면서생(白面書生)일망정 한마디 드려야 하지 않나 나름 고심(苦心)하다가 발견한 것이 이 책이었다. 적절히 말 꺼낼 길을 고민하던 참인데 많은 분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있으니 거기 더해 슬쩍 겸연쩍은 숟가락을 얹을 따름이다.
소위 막장드라마가 뜨려면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써야 대박이 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최근에 아이돌 스타에서 종가집의 며느리로 변신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KBS월드에서 방영되었는데 최종회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악역의 인물들이 어쩌면 그렇게 180도로 돌변(突變)하여 훈훈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막장드라마는 최종회에 이르기 직전까지 인물들 간의 끈질긴 개입으로 갈등이 얽히고설킨다. 너무나도 귀에 익은 대사들 “너를 위해 그러는 거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우리 가문의 체통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등은 그러나 위의 베스트셀러에 의하면 모두가 자신의 과제를 넘어선 과도한 개입일 뿐이다. 요컨대 당사자를 위한 것이 전혀 아니고 철저히 발언자의 욕망만을 반영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용한 드라마에서 기획사 대표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변화는 말 그대로 극적(劇的)이다. 아들에게 집착하며 며느리를 괴롭히던 그녀는 최종회에서 완전히 반대로 바뀐다. 간절하게 변화를 열망하고 평생을 노력해온 모두(冒頭)의 교수님 체험에 비추어 보자면 그건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인간 개조의 승리편’ 되시겠다.
그리 어렵다면 대체 백면서생께서 보시는 해결책은 무엇이냐 물으실 수 있다. 다시 베스트셀러의 용어를 빌면 처방은 의외로 간단명료한 바 ‘과제의 분리’라는 것인데, 아주 쉽다. 주변 사람들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구분하여 개입을 차단하고 자신 과제에만 몰두하면 끝!
그런데 그 구분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 않느냐 하신다면 일견 옳은 말씀이다. 거실의 그림이 걸릴 만한 자리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글귀들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에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있다. 특정 종교의 분들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즐겨 걸기도 한다. 공통되게 물의 장점을 살려 인생에 대입한 아름다운 명구들이지만, 그것이 생활에 응용되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과제의 분리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깔축없는 화중지병(畵中之餠)일 뿐이다. 하지만 내게는 여기에 묘방이 하나 있다. 상대를 위해 하는 말이라던 것을 거울을 보면서 정색을 하고 ‘나’에게 한번 해보시면 과제 분리라는 숙제는 완전하게 한방에 정리된다.
그리하여 “니가 뭔데!”와 함께 감정이 욱하고 치오른다면 그건 ‘개입’이다. 그런데 개입을 멈추고 나면 인생의 긴긴 시간들이 갑자기 텅 비어 할 일이 없게 된다.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어떤 이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자신의 ‘과제’ 삼아 올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정’을 하게 되면 역사에 대한 유일한 사관을 강요하게 되니 지나친 ‘개입’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 그 빈자리를 메우는 요긴한 일들로 추천하고 싶은 건 처음에 소개드린 교수님 비슷한 분들의 강의를 읽는 것이며, 인정 욕구 벗어나는 용기를 배우는 것이며, 주변인들 괴롭히는 자잘한 만족감 털어내고 민족 통일의 과제에 도전하는 것 같은, 내면의 마음밭을 경작(耕作)하는 행위들이다. 혹 영어와 좀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라면 ‘렛잇비’ 노래를 다섯 번쯤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양념 삼아 하나 더하면 한드[한국 드라마] 최종회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변신은, 막장이라고 욕하며 본다는 걸 감안해도 눈앞에서 ‘인간’이 변하는 것이라서 ‘개과천선’을 이끌 도움의 환타지 되어 줄지도 모른다. (한유일 : 교사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