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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캄보디아의 소리
새벽 어둠이 걷힐 무렵부터 프놈펜은 서서히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오토바이가 그 주인공이다. 새벽 시장에 가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일하러 나가는 사람, 학교 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오토바이 페달을 밟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오토바이 소리는 시내를 지배하는 배경음으로 자리잡는다. 간선도로뿐만 아니라 주택가 이면도로까지 오토바이는 온종일 소음을 내면 달리고 이 속에서 도시민들은 하루를 산다.
그 다음은 차량들이 내는 소리인데 시내 곳곳이 막히고 길이 복잡해서 저속 주행을 하기 때문에 차량 소음은 그리 신경 쓸 정도가 아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한데 뒤섞여 달리고 틈만 생기면 오토바이가 비집고 들어오지만 경적을 울리는 차량은 거의 없다. 적당히 끼워 주고 느긋하고 조용하게 기다려 준다. 오토바이끼리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잦은 편이지만 큰 사고는 별로 나지 않는다. 사고가 나도 멱살잡이나 언성을 높여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
건기는 결혼 시즌이다.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이때에 집중해서 결혼식이 열린다. 결혼식은 아침 일찍 확성기 볼륨을 높여 음악을 틀어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식을 치르는 집 이웃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전체가 음악 속에 파묻힌다. 고음의 캄보디아 민속 악기가 내는 소리라 외국인에게는 소음으로 들리기도 하고 꽤 신경이 쓰이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함께 결혼을 축하하는 정겨운 하모니로 즐기는 것 같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열리는 피로연이다. 지인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면서 축제의 시간을 갖는다. 한쪽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악단과 가수를 초청해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혼인을 주관하는 가족들과 손님들이 무대에 올라 연실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즐긴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녀노소가 어울려 춤을 춘다. 오후 서너 시에 시작해서 밤늦도록 축제의 장이 이어진다. 건기의 주말 저녁에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음악과 춤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낮고 느리고 장엄한 음악 소리가 들리면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는 신호다. 관을 실은 운구차에 스님과 가족들이 타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차량과 오토바이로 서행하면서 지나간다. 이때만큼은 장의 행렬을 추월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거의 없다. 서행을 하면서 보조를 맞춰 준다. 마지막 가시는 분에 대한 예의가 각별하다는 것을 그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결혼이나 생일, 명절 같은 경사스런 날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나는 길에도 음악이 함께 한다.
수년간 철길과 수산물 시장 옆 대로변에 살다가 주택가 쪽으로 숙소를 옮겼더니 밤이 조용해서 좋은데, 이사한 뒤 처음 며칠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새벽마다 잠결에 듣던 수산물 시장의 왁자지껄한 장마당 소리, 하루 한두 번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근방의 모든 견공들이 기차 소리를 흉내내며 일제히 짖어대던 개 소리, 각종 질그릇을 싣고 혼잡한 도심을 유유히 지나며 울리던 소달구지의 방울 소리…이런 캄보디아의 소리가 멀어져 조금은 섭섭하다.
우기로 들어선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올해는 비다운 비가 별로 안 내렸다. 아직 모내기를 못 해서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오늘도 비가 올 듯하다가 하루가 그냥 저물었는데, 콩 타작하듯 화끈하게 쏟아지는 캄보디아의 시원한 빗소리를 내일은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