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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아들에게
아들을 낳는 일은 여자에게 특별한 경험이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즈칸 같은 영웅호걸을 비롯해 세상 모든 남자들이 여자 몸에서 태어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체험하기 때문이다. (아들 출산 후 아내가 기고만장해졌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데, 아들 낳은 유세라기보다 남자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탓이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이래 성적이 거의 떨어져 본 적이 없다. 한글을 못 떼고 입학한 학생은 우리 아이뿐으로, 꼴찌에서 시작한 탓에 처음 상당기간동안 퇴로자체가 없었다. 어쩌다 꼴찌에서 두 번째를 하기도 했다. 한 아이가 결석하여 시험을 못 치렀을 때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선생님 말씀이 어찌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던지. 언제부턴가 엄한 시어머니 마음 녹듯 가까스로 성적이 올라 꾸준한 상향곡선을 그린 끝에 대학생이 되었는데, 가치관, 세계관, 학점관리, 군대 ‧ 취업문제 등, 사회진출을 앞두고 몹시 힘들어 한다.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옛 부족사회의 성인식이 오늘날 교육제도 전체에 걸쳐 시행되는 ‘시험’의 형태로 치러진다고 보았다. 많은 문화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성인식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실행된다. 둘째, 강력한 충격이 주어진다. 셋째, 자신의 지위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시험은 모든 도움과 단절시킨 상태의 삼엄한 분위기에서 실시되고 그 결과를 통해 각자의 위치를 알려준다. 대학에서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특별한 의상을 차려입고 원로와 학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어른 될 자격을 얻는다는 것이다.
일테면 아들이 성인식을 오래도록 치르고 있는 셈이다. 원시부족에서는 사오 년이면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었다는데 갈수록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요즘은 이십 년 훈육을 받고도 미진해한다. 현대교육제도에 폐단도 많지만 맹수와 대결을 시키거나 적군의 목을 베 오게 하는 식의 원시사회의 잔인한 성인식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다. 거미가 처음 거미줄을 칠 때 허공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고 한다. 매달려 갈 줄이 없어서다. 그렇게 첫 통과의례가 어렵다는 의미일 테다. 한 가지를 얻기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호락호락 첫 관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의미일 테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 저마다 재주껏 잘들 살고 있다. 한 발짝 앞에 허방다리라도 있는 양 발아래가 늘 불안한 게, 이 나이가 되도록 성인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나같이 덜떨어진 사람도 있긴 하지만. 멋모르고 아이를 갖고 갑자기 사람이 죽어나가도 어찌어찌 일을 치르게 되는 것을 보면, 모종의 시스템이 사회 구석구석 작동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인식이 독립된 인간으로 설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데서 비롯됐듯이 수만 년 전부터 선조들이 관습이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아들아, 너무 겁먹지 말기 바란다. “인생은 아이스크림이야, 녹기 전에 맛있게 먹어야만 해” 어느 영화의 대사가 의미하는 바도 놓치지 말기 바란다. 청춘기는 유난히 빨리 녹아버리더구나.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