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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데이트 폭력
인류 집단 중 가장 호전적인 부족하면 20세기 초까지 아마존 밀림에서 문명사회와 차단된 채 살아온 ‘야노마미족’을 꼽는다. 가장 폭력적인 사람이 권력을 잡는 사회로 남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난폭함을 과시하려는 관습이 유지됐다. 인류학자 샤피로 박사에 따르면, 야노마미족 여성의 위상은 남편에게 맞는 빈도수가 많을수록 올라간다. “남편에게 이렇게 자주 머리를 얻어맞다니, 당신 남편은 마누라를 무척이나 아끼는 군요” 남성의 잔인함이 최고 덕목이었던 만큼 매 맞지 않는 여인을 사랑받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으로 취급하며 은근히 자기 남편으로부터 학대받기를 바란다고 한다 (매를 벌어요, 매를!).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던가, 폭력을 확실한 관심의 증표쯤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밥이 익는 동안 발로는 불을 때고 손으로는 반찬을 만들고 등에는 아이를 들쳐 업었다…그래도 할 것 다 한 우리 한국 여인들이다.” 신경정신과의사 이시형 박사가 어르신 세대 한국 여인의 부지런함에 대해 예찬했다. 내 오랜 기억에 의하면 그것도 모자라 남편의 구타까지 감수하는 경우가 흔했다. 우리 집으로 피난 와 퍼렇게 멍든 눈자위를 날계란으로 문지르는 게 정기적인 행사였던 아낙네도 있었으니. “마누라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한다”는 말이 거리낌 없이 통용되던 시절로, 바깥 사회에서 무시당한 좌절감을 집안의 만만한 아내나 아이들에게 폭발시키는 가장이 수두룩했다. 전쟁과 가난, 가부장제가 빚어낸 비극으로, 무지와 무능에 지배욕까지 겹치면 논쟁보다 폭력에서 배출구를 찾기 십상이다.
“사랑하려거든 목숨을 걸어라.” 문학작품의 한 구절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범죄가 낯선 사람이 아닌 사랑하는 사이에서 발생한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 살해된 여성 중 38%가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한 것이다. 1967년 영국연보에는 172건의 살인사건 중 50%에 이르는 81건이 같은 유형의 살인 형태로 기록되어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정부가 개인을 지켜주지 못하던 시기의 여성에 대한 근친폭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편차는 있지만 다행인 점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이나마 폭력이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 진보논객들의 과거 데이트폭력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많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사안자체에 대한 사죄나 처벌방법에 대해 논하는 축보다 폭력은 대물림된다거나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논리로 지난 성과나 창창한 미래까지 매도하는 축도 상당해 염려스럽다. 누구나 한 꺼풀 벗겨 놓으면 거기서 거기이듯이, 사노라면 자기안의 공격성과 마주하게 마련이다. 인간이란 동물적인 충동과 문명화된 이성 사이를 오가는 부조리한 존재인 까닭이다.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 후에야 배우는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고. 부모세대 학대 경험이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는 반면교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을 터, 싸잡아 구제불능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싶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