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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외국인은 봉이다
가방을 하나 사 주려고 직원을 데리고 중앙시장에 갔다. 몇 개 가게를 돌다가 한 가방 가게로 들어갔다. 눈에 들어오는 가방이 있어서 값을 물어 보니 25달러 달라고 했다. 크기와 품질로 봐서 10달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불렀다. 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 두말없이 뒤돌아 나왔다. 가게 주인이 값을 깎아 줄 테니 사라고 간절하게 매달렸다. 20달러, 15달러, 12달러…처음에 25달러라던 가방 값이 나중에는 9달러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사지 않았다. 다른 가게에 가서 비슷한 것을 10달러 주고 샀다.
캄보디아에서 시장 같은 데 갔다가 기분을 잡치고 올 때가 가끔 있다.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바가지를 씌우고 보려는 상인들의 태도 때문이다. 캄보디아에 꽤 오래 살아서 그들의 생리를 좀 안다고 자처하는데도 그들에게 수시로 당하며 산다. 캄보디아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밥 먹듯 흔히 겪는 일이다. 흥정을 해서 물건 값을 상당히 깎았다고 해도 여전히 상당한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게 보통이다.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는 애초부터 그렇게 하지도 않는데 외국인한테만은 늘 그런다.
어디 그뿐인가. 대중교통 수단인 모토나 툭툭이를 타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같은 거리인데도 우선은 두 배 이상 부른다. 흥정을 해서 좀 깎아 보지만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요금을 비싸게 주고 타는 데서 벗어나기 어렵다. 차를 몰고 다니다 경찰에게 걸려도 외국인은 외국인 대우(?)를 받는다. 경미한 위반이라도 처음에는 10달러를 내라고 한다. 적당히 타협을 해서 줄여 보지만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몇 배 높은 범칙금을 내는 게 보통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직원에게서 가끔 야속함을 느낄 때가 있다. 밖에 물건을 사러 나갈 때 흔히 그렇다. 시장이나 가게에서 물건을 흥정할 때 내 직원인데도 별로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 흥정하는 데 나서 줬으면 하고 기대하지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자기가 자기 물건을 살 때에는 열심히 깎지만 자기가 모시는 주인이 물건을 살 때에는 거의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내 직원이 내 편인지 저쪽 상인 편인지 의구심이 들어 은근히 화가 날 때도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외국인을 대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편이다.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안 통해도 거리감을 갖거나 피하는 일이 없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에 비해 훨씬 국제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속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겉으로는 자기 나라 사람이나 외국 사람이나 똑같이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인과는 확실한 선을 긋고 산다. 특히 외국인과의 비즈니스나 근로관계, 이익을 다투는 일에 있어서만은 자기 나라 사람과 외국인은 확실히 구분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캄보디아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예로부터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했고 침략과 침탈로 인해 여러 민족이 뒤섞여 함께 살아 왔다. 특히, 앙코르 제국이 무너진 이후 근세 200여 년간 다른 나라에 종속된 채 국가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 독립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는 현재에도 외국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고 이것은 개개인의 삶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피지배 국민으로서의 외국에 대한 배타적 사고와 외국인을 통한 경제적 이익 실현 욕구가 캄보디아인의 심성에 깔려 있다. 이것이 외국인을 ‘봉’으로 보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