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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옛 영화, 재 부상하다
저돌적이고 무분별한 크메르 루즈가 프놈펜에도착해서 파티를 망쳤다. 소위 캄보디아 영화계의 황금 시대라고 불리는 기간인 1960년대에서 1970년 대 초반까지 캄보디아에서는 약 400개의 영화들이 상영됐다. 그 중 많은 숫자가국경을 넘어 태국 영화계에서 상영되었고, 그들 중 몇몇은 인기 있는 오락으로써의 자리를굳혔다. 이 중 수다쟁이 뱀과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있는데, 태국인 들에게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클래식이 되었다.
당시의 캄보디아의 영화 제작자들은 모두 자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가마솥에 원시주의, 마녀의 재능, 멜로드라마와 민속 공포를 집어넣어 이는 색깔 있고 향기로운 냄새로 극장을 가득 차게 만들었다. 크메르 루즈가 1975년 수도에 근접했을 때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예술가들과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도피야 했고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만들어진 400여 개의 영화들 중 30개 미만의 영화들만이 살아남았다. 이것은 동남 아시아 영화계의 역사 상 최대의 손실 중의 하나였다.
띠어 림 꼬은(Tea Lim Koun) 또한 도피해야 했다. 그가 프놈펜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잡아 탈 때, 그의 영화들 중 16mm 필름 한 개를 쥐고 있었다. 극장에서는 폭탄이 터졌고 폭동이 심해지자 통행 금지령 발표되어, 영화관이 폐쇄됐다. 지성인, 작가, 배우, 그리고 예술가들은 크메르루즈의 우선적인 살해대상이였다.
띠어 림 꼬은은 오늘은 정치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예술이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그는 전설적인 캄보디아인 감독으로 캄보디아의 가장 유명한 영화인 1970년 작 뿌어 껭껑(Puos Keng Kang ; 껭껑 뱀)을 만든 사람이다. (태국에서는 응우 껭 꽁(Ngu Keng Kong)이라고 알려져 있다.) 몬트리올에서 수십 년을 살던 띠어는 지난 달 베를린의 국제 영화제에 참석해 그의 작품 두 개(뿌어 껭껑과 무너져가는 도시에서의 마지막 항공에서 간신히 구해낼 수 있었던 뻐으 축 써(Peov Chouk Sor))를 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띠어는 자신이 11개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6개의 영화만이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적어도 자신이 여전히 지금 갖고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베를린 심사에서 띠어 림 꼬은은 두 명의 크메르 영화 제작자 리 분 임과 리 요우 쓰리응와 함께 도착했다. 또한 캄보디아의 그 불쌍한 짧은 영화 역사 속에서 잘 알려졌던 여배우 디 싸벳과도 동참했다. 이런 모임은 프놈펜에서 혹은 적어도 방콕에서 개최되었어야 하는 모임이다.
이런 옛 크메르 영화에 대한 발굴은 역사적인 호기심과 다음과 같은 희망 속에서였다. 캄보디아의 상황이 안정을 찾았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태국-캄보디아 국경에서 벌어지는 입씨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젊은 크메르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영화 역사를 발견하고, 영화를 또 다시 과거와 미래를 보는 수단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네 개의 오래된 캄보디아 영화들과 함께, 베를린의 영화제는 또한 ‘황금의 잠자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를 심사했다. 이 영화는 파리 기반의 프랑스 캄보디안 인, 다비 초우(Davy Chou)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캐는 향수적인 시각을 크메르 영화의 황금 시대에 던졌다. 그리고 이 젊은 감독은 그의 국가적인 영화 유산의 최근의 재생에 있어서 도구적인 역할을 한다. ‘황금 시대의 잠자는 사람들’은 이 달 말에 태국 영화 아치브(Archive) 에서 공여될 것이다.
빈티지 캄보디아 영화들의 이야기는 영화 역사의 연구에 있어서 빠진 연결된 이야기들이다. 그것은 또한 전 아시아 시대에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서 원래 팝 문화였던 것의 환생이 어떻게 상호적이고 자연스러우며 그토록 풍부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원천 이야기가 태국 사람들 간에 낭 십 송이나 쁘라롯 메리 로 이름이 알려진 리 분 임(Ly Bun Yim)의 1968년 작 영화, 뿌티싸엔 니응 꽁레이(Puthisen Neang Kongrey)가 베를린에서 태국어로 더빙된 버전이 16mm 프린트로 된 영화로써 심사되었다.
한 편, 띠어 림 꼬은의 뱀-연인 영화, 뿌어 껭꽁이 태국의 여배우, 아란야 남옹과 크메르의 듀엣, 디 사벳와 지아 요우톤이 극중 역할을 맡은 속편이 나왔다. 띠어 림 꼬은 감독은 뿌어 껭꽁 전에 적어도 캄보디아 영화 5편이 방콕에서 방영됐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에 이민을 가기 전에 방콕 에까마이에서 잠시 머물렀었기 때문에 약간의 태국어를 할 줄 안다. 그는 그 때 제 영화가 태국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공하게 돼었다고 말하며, 그영화 영화는 1971년 빠투남에 있는 무앙 통 극장에서 방영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왔다고 말했다.
뿌어 껭꽁은 자신을 남자로 변화시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한 마술 뱀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그녀는 독사들의 꿈틀거리는 머리 모양이 둥지로 씌워진 메두사 스타일의 소녀를 낳았습니다. 순진함과 진지한 초현실주의를 갖는 이 두 종간의 환상은 태국에서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싱가폴, 그리고 베트남과 필리핀에서도 히트를 쳤다. 이 영화는 역사상 캄보디아의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써 남아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가 합작해서 지난 2001년 파이 삼 앙 감독이 현대판 뿌어 껭 꽁을 다시 만들었다. 여기에는 캄보디아 여배우와 태국의 배우들이 출연했다.
프놈펜에서 볼 수 있는 중국과 프랑스, 태국과 인도의 영화의 영향을 받아온 온 띠어 감독은 뿌어 껭 꽁을 크메르 영화계를 세계 시장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캄보디아 영화가 나라 밖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믿었다 말했다. 아마도 그는 그것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오로지 역사가 캄보디아에게 좀 더 관대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1970년 대 초반, 베를린에 있던 리 분 임은 프놈펜에서의 상황이 불안정해지자, 자신의 영화 낭 십 송을 인도와 방콕에서 상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영화를 방콕 버전을 위해서 태국 어로 더빙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모든 것은 취소되고 말았다. 그가 방콕, 프랑스 그리고 후에 캐나다로 도피했을 때, 그는 띠어 림 꼬은의 도움으로 그 영화의 복사본을 유일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이것이 베를린에서의 낭 십송의 16mm 심사가 태국에 있는 이유이다. 영화가 태국에서 전에 전혀 방영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리 분 임은 자신의 20 편의 영화 중 3 편을 구해낼 수 있었지만, 리 유 쓰리응, 또 하나의 작가, 애태우는 제목 ‘숫처녀 악마”, ‘성스러운 연못’ 등과 같은 제목을 갖는 작품들을 만든 그는 그가 1960년대에 만든 모든 영화들을 잔혹한 행위들로부터 탈출해서 라오스와 프랑스로 갈 때 잃어버리고 말았다./ 방콕포스트에서-다음호에 이어짐.
리 분 임은 자신의20 편의 영화 중 3편을 구해낼 수 있었지만, 리 유 쓰리응, 또 하나의 작가, 애태우는 제목’숫처녀 악마”, ‘성스러운 연못’ 등과같은 제목을 갖는작품들을 만든 그는그가 1960년대에 만든 모든 영화들을 잔혹한 행위들로부터 탈출해서 라오스와 프랑스로 갈 때 잃어버리고 말았다.
리 분 임은 지난 1968년 캄보디아에서 낭 십송을 캄보디아 모든 지방에서 상영했고, 곧 태국에 있는 한 영화관이 연락이 와서 영화를 가져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보이지 않는 사람”을 전에 방콕에서 방영하곤 했다고 말하며, 낭 십송을 위해서는 최고의 더빙 인을 초빙했었다고 밝혔다. 우리는 결국 태국의 솜퐁(Sompong)과 주리(Juree)를 와 더빙작업을 완벽하게 해 냈지만 캄보디아 내 너무 안 좋은 상황으로 인해 모든 것을 중지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이 방콕에 한 번 갔었고 저의 부모님들을 빼내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서 1976년 프랑스로 떠났다고 말하며, 태국어로 더빙 된 낭 십송은 태국에 저장되어 있어 안전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이 베를린 행사 전에는 거의 어느 곳에서도 방영된 적이 없다.
이 곳에서 방영이 되었다면 낭 십송은 분명 히트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상상해보기 쉬운 일이다. 영화는 12 명의 자매 이야기이다. 그들은 모두 한 명의 왕자와 결혼을 했는데 왕자는 사람을 잡아먹는 질투의 거인과 같은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지고 있었다.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의 지적인 내용의 영화와 반대되는 이 시대의 유명한 캄보디아 영화들은, 신화와 민속, 공포, 마술, 그리고 일종의 이 세계의 이 지역의 대중 관객들의 주 미각을 정의 짓는 본능적인 선정주의 등의 제3세계의 원천에 접근한다. 많은 크메르 영화들이 천사, 거인, 말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며 유치한 수준의 특수효과들을 사용했다. 초자연적인 요소들은 경고나 알림 없이 평범한 현실 속으로 스며든다.
이것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구식이거나 혹은 심지어 순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관의 건축학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한 영화들의 거의 소멸되는 특징이나 진귀함 그리고 그들의 시간이 얽어매는 솔직함은 그들에게 유일한 역사적 가치라는 자격을 준다. 띠어 림 꼬은은 그러한 이야기들이나 스타일이 캄보디아 영화의 일부다고 말했다. 그느 이것이 관객들이 좋아했던 것들이며 기적, 마녀의 행위, 귀신들, 순전한 멜로 드라마, 그리고 사랑 이야기 등의 슬픔과 드라마가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영화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뿌어 껭 꽁, 낭 십송, 그리고 뻐으 축 써 등의 영화의 재출현은 그 대부분이 잊혀졌던 극장 문화의 기억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나온 영화들은 대부분이 한 사람, 르티 빤(Rithy Panh)의 것이다. 그는 파리 기반의 영화 제작자로 그의 유명한 작품들은 크메르의 붉은 공포를 탐색하는 특징들을 갖는 다큐멘터리 형식들이다. 반면 황금의 시대의 잠자는 사람들의 다비 초우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의 젊은 영화 제작자들의 새로운 수확물이, 뿌어 껭 꽁에서 돌 뱀처럼 긴 잠을 자다가 천천히 깨어나는 그래서 다시 한 번 숨을 쉬고 살기 시작하는 장소인 자신들의 나라에서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의 힘을 발견하고 있다./방콕 포스트·정인휴 번역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