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간통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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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을 두려워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있었다. 뭇 사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여인, 끝임 없이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는 도발적인 아가씨와 기적처럼 사랑에 빠진다. 자유분방한 여인과의 사랑 놀음이 어찌나 아슬아슬하던지 파경은 예정된 듯하다. 애인을 잃을까 조바심하던 어느 날 남자는 여자를 죽여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다. 그 청년은 늙도록 연인을 수장(水葬)했던 해변을 떠나지 못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결코 배반할 리 없는 옛사랑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도 있다. 얼마 전 세종시 한 편의점에서 치정과 금전 문제로 얽혀 전 동거녀의 동거남과 오빠, 아버지에게 엽총을 난사한 후 자살한 사건. 지난해 팔달산의 헤어진 내연녀 토막사건. 모두 50대 남성이 저지른 일로, 최근 중년의 치정살인 건수가 부쩍 늘었다는 보도다. 사랑과 증오에는 나이가 따로 없는 모양이다.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는 어느 광고 카피처럼 변화무쌍한 사랑을 오래 감당해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임에 분명하다.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네 차례의 위헌 소원을 거치면서 개인의 성관계는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 간에 풀어야할 사안이라는 추세에 따라 폐지 수순을 밟아 왔다. 간통죄 폐지는 성도덕 문란을 야기해 가족 해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간통죄가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다수의 의견에 힘입어 제정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간통죄는 폐지되었거나 적용례가 거의 없어 사문화한 상태다. 이슬람 국가들과 인도, 태국, 캄보디아에 남아있는 정도다. 캄보디아는 2006년 간통죄를 제정했는데 축첩은 물론 공식행사장에 젊은 애인 동반을 예사로 하던 정치라이벌을 겨냥한 훈센 총리의 제안이었다.(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리엘(약 250불)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간통죄 형사처벌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50대 53.5%, 60세 이상 53.2%, 열정으로부터 차츰 멀어지는 연령대에서 처벌 찬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경제활동이 줄고 육체적인 한계 또한 감지되기 시작하여 여러모로 심리적 위축을 느끼는 중년에 이르러 반려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는 탓이리라.

간통죄 존폐여부가 성윤리에 미칠 파장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죄의식을 느낄 축에선 법보다 혼외정사가 배우자를 저버리는 죄라는 사회통념을 더 두려워할 터이고, 뜨거운 박애정신으로 이 나라 저 나라에 배우자를 두고 사는 이들에겐 여름날 강아지 하품소리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남의 이불속 사정에 공권력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판가름이 난 마당에 개인적으로 왈가왈부할 일은 못되지만, 부부가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구축해가는 일련의 노력은 고귀하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던가. “사랑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지만, 그 사랑을 성장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남자와 여자도 결혼해서 반세기가 지나기 전까지는 완벽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