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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캄보디아 여행객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으며, 눈은 초생달 같고, 두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름은 되고, 길이는 한 발 넘어 되겠으며,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 같고, 코의 부리는 굼벵이 같으며, 끝은 누에등 같은데,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넣는다…”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난생처음 코끼리를 구경하고 묘사한 대목이다. 연암은 1780년 마흔넷에 출세한 삼종형 덕에 중국의 문물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청 황제 건륭제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들의 사행(使行)단에 끼게 되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개인적인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국가의 외교사절단 신분으로 중국이나 일본에 파견 나가는 게 전부였다. 삼사와 역관, 화관, 의원, 군관, 마두, 하인 등, 행차를 수행하기 위한 인원만 해도 수백 명에 달했고 자연과 싸우는 그 여정은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 정도로 험난했다.
19세기 초까지 서구에서도 여행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기 전이라 모든 일을 사람 손을 빌어야 했던 당시로선 충분한 돈과 시간의 여유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기본 여행경비는 차치하고도 말, 마차, 하인들을 대동해야 했는데, 평균 소득의 20~30배 고소득자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공식적인 지수에 따르면, 1800년 영국과 프랑스 평균 소득의 20~30배였던 사람은 오늘날 수입이 평균 소득의 2~3배인 사람 정도의 생활을 했을 것이다.(피케티, 21세기 자본론) 해외여행 붐을 맞고 있는 측면에서 보자면, 수개월에 걸쳐 마차로 달리던 거리를 몇 시간 만에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옛 왕족도 누릴 수 없었던 호사를 너도나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가 사는 것에 만족해하지 않으니, 역시 행복이란 동시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느껴지는 모양이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조상 덕에 많은 외국인이 캄보디아를 찾고 있다. 요즘같이 쾌적한 건기에 주변 교민 중 누군가 잠수를 탔다면 십중팔구 고국 여행객을 접대하느라 그럴 터이다. 타국살이 하는 연고자도 만나고 자유롭게 해외 명승지 유람도 할 겸 방문하지만, 관광인프라가 미비한 캄보디아에서 독자적인 여행은 버거운 노릇이다. 감격스런 해후와 개인적인 생활은 별개의 문제이련만, ‘정(情)’과 ‘도리(道理)’라는 복잡한 정서의 지배를 받는 우리 같은 구닥다리는 숙식은 물론 여정까지 동행하곤 한다. 앙코르와트만 떠올려도 멀미가 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님 본 김에 쉬어가자꾸나, 강제휴가를 즐기는 사이 생업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고. 여행의 본령은 목적 없는 방랑벽에 있다고 하나, 유신 세대의 못 말릴 실적벽은 여행 또한 숙제하듯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술잔을 기울이며 옛 얘기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침대차로 밤을 낮 삼아 이동하기도 해 무박의 강행군이 되기 일쑤다. 어쨌든 외국에 사는 처지로 손님을 치르고 나면 진정한 휴식이 필요해 진다. ‘Travel(여행)’의 어원은 ‘Travail(고통, 고난)’이라는데,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듯하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