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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 칼럼] 밤비 신드롬
<밤비 신드롬>이란 게 있다. 밤비는 1942년에 출시된 월트 디즈니사 애니메이션의 아기사슴 이름이다. 어쩌다 어미와 떨어져 홀로 숲이나 공원을 헤매는 앙증맞은 아기사슴. 행인들은 눈물을 머금은 듯한 커다란 아기사슴의 눈망울을 보고 애틋해져서 스스럼없이 쓰다듬어주곤 하지만, 그 행위가 새끼사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부른다. 어미사슴은 오로지 냄새를 통해서만 갓 태어난 새끼를 알아볼 수 있는데, 사람 냄새가 조금이라도 배면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아기 사슴은 어미와 동족으로부터 버림받아 굶어죽을 처지로 내몰린다. 이처럼 죽음을 불러들이는 위험한 애정표시를 일컬어 <밤비 신드롬>이라고 한다.
지난해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일가족사기극 사건이 화제를 모았다. 한때 의류업체에 다니며 어렵지만 착실하게 살아 온 부부가 IMF로 실직 한 후 두 자녀와 함께 거리로 나앉게 된다. 유모차에 세 살배기 어린 아들을 태우고 다니며 “가족여행을 나왔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아내가 애를 낳다가 과다출혈로 쓰러졌는데…”, 애달픈 사연을 둘러대 돈을 뜯어내는 수법으로 전국을 떠돌며 생활한 햇수가 8년에 이른다. 그 가족이 계속해서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어 매번 온정을 베푼 선량한 시민들 때문이다. 오랜 기간 길거리를 전전하며 10대를 훌쩍 넘긴 그 아이들은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어 지적수준이 유치원생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틀에 박힌 일상 속에 무뎌졌던 감각이 되살아나 순수함을 되찾기도 하고 호기가 발동되기도 한다. 이름난 관광코스마다 구걸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까닭이다. 지난해 캄보디아를 방문한 관광객이 450만여 명에 달했다. 앙코르와트 따프롬 사원에 들어서면 자선을 바라는 거리의 악단을 만날 수 있다. 캄보디아 내전 때 불구가 된 사람들로 구성된 악단은 멀리서도 관광객의 국적을 식별하여 그 나라 전통곡을 연주해 관심을 끈다. 추측컨대, 초등학생처럼 명찰을 달고 깃대를 따라 오는 단체는 일본인, 부스스한 스타일에 시끌벅적한 무리는 중국인, 유행하는 명품브랜드차림의 멋쟁이들은 한국인. (한국인의 여행지 음주문화로 보건대 시각장애인이라도 후각을 통해 식별이 가능할 듯)
고국의 지인께서 바쁜 시간을 쪼개 캄보디아를 찾았다. 앙코르와트 여정에서 영락없이 걸인들과 마주쳤다. 복지정책이 미미한 빈국의 민낯이다. 어른은 차치하고 아이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자 어디 숨어있었는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떼로 몰려들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교실에서 눈을 반짝여야 할 아이들. 인도하는 손길에 따라 훌륭한 시민이 될 수도, 뒷골목 범죄자가 될 수 도 있는 무구한 아이들. 한 차례 감상적인 호의가 어떤 결과를 부를지… 캄보디아 어린 것들의 눈망울, 일가족 사기단 자녀의 눈망울, 사람 손을 탄 밤비의 눈망울이 겹쳐와 마음이 무겁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