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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이 보는 세상] 갈무리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침묵처럼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만해 스님은 희망의 내일을 얘기하여 민족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절로 오는 건 아니고 ‘사랑의 노래’ 필요하다 마무리하였습니다.
매듭이란 실을 잡아매어 마디를 이룬 것을 뜻합니다. 보통은 일이 순조롭지 못하여 막히거나 맺힌 부분을 일컫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의 순서에 따른 결말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꼭 필요한 과정의 하나일 지도 모릅니다.
나무 둥치를 가로로 자르면 둥근 테가 나타나는데 대개 일 년에 하나씩 생깁니다. 그것으로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기에 원숙함을 빗대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매듭처럼 끝인가 보일 수 있지만 새로운 출발의 머금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해 스님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인 자 흩어진다는 이치를 쉽게 이해합니다. 다만 스님처럼 그것을 슬퍼하기보다 도리어 기쁨으로 승화시킬 노래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진정 안다면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건 세상의 또다른 귀한 이치입니다.
또한 새 출발을 말할 때 잊지 말 것 중 하나가 지나온 날들의 정비라고 생각합니다. 새롭다는 말 때문에 자칫 옛 것은 모두 나쁜 것 취급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떠한 맥락에서든 경험이란 소중한 것임을 기억합니다.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는 일 역시 스킨십 못지않은 짜릿한 체험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감사함을 새삼 말씀드리며 가다듬어 새롭게 할 재료들로 잘 쓰겠음도 약속합니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한국영화제가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프놈펜에서 열렸습니다. 금년엔 5회 캄보디아국제영화제[CIFF]의 일부로 기획되어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일의 폐막작[closing movie]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뚤꼭의 ‘TK Avenue’에 자리 잡은 국내 시설 못지않은 리전드 시네마에서 프놈펜 온 이후 처음 가보는 극장 나들이 겸하여 영광스런 폐막작을 현지인들과 성황(盛況)리에 관람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를 캄보디아에서 보는 감회는 독특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보았던 영화이지만 온통 현지인들에게 둘러싸여 감상하는 일은 또 달랐습니다. 만원 이룬 객석의 적극적인 웃음과 리액션은 나 또한 처음인 듯 흥분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국 영화가 이들 국제영화제에 피날레로 선정된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류(韓流)를 보더라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에 걸맞는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고 서로간 관계를 어떻게 정립(正立)할까 하는 고민도 요청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언어들의 무수한 어휘 중 가장 으뜸은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없이 주고 원없이 받기만 해도 좋을 듯한 그 사랑에도 갈무리는 필요합니다. 상황 이럴진대 인간사 모든 일에는 적절한 매듭과 연륜의 나이테를 더할 멈춤이 요구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물건 따위를 정리하거나 간수하는 행위에도,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할 때에도 우리는 자칫 외부에서 인지(認知)되는 것만을 주목하기 쉽습니다. 연말 프놈펜 거리를 울리는 캐럴이나 성탄 축하의 트리 장식처럼 쉬이 눈에 띄기 때문일 겁니다. 그럴수록 보이지 않는 우리 내면의 바탕이 더 중요한 건 아닐까요.
비벼 기댈 좋은 전통의 언덕이 없다면 진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번쩍이는 서양의 문화와 재기 발랄한 한류가 구슬 서 말로 손에 쥐어져도 꿸 실이 없다면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그 실은 분명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통해서 자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2월 무르익어도 계절감 느끼기 어려운 프놈펜에서 카페에 앉아 캐럴 들을 수 있는 건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허나 한 해가 다르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물씬물씬 느끼게 된다는 말들 듣게 될 땐 뭔가 아쉽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통으로 일 년을 보낸 첫해 연말의 감상은 외국의 문물(文物)이 너무 급작스레 넘친다는 느낌입니다.
그것을 도에 넘지 않도록 제어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일은 그러나 캄보디아인들 내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것조차 엔지오나 외국 기관에 의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걱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안에서 그게 나오기 위해서도 역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분위기가 제일 필요한 한 가지 아닐까 합니다.
저 또한 많은 이들 가슴에 울림으로 남을 생각 하나 벼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편린(片鱗)일망정 교민들께도 현지 분들께도 웃음과 희망과 힘과 감동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송구영신(送舊迎新)과 행복(幸福), 건강(健康) 기원하면서 어느 내일 다시 밝게 만날 인연(因緣)을 믿습니다.
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