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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다른 세상의 달
요즘 프놈펜 날씨가 좋다. 투명한 햇살에 추울까 더울까, 볕 좋은 곳에 앉아 콩 고르기에 그만이다. 하얀 쟁반 위에 검정콩을 가득 펼쳐놓고 돌, 덤불, 쥐똥, 쭉정이 따위를 골라내다 보니, 불쑥 쌀 점(占) 치듯 콩 점을 칠 수 있겠다 싶다. “새해엔 무조건 남서쪽으로 가봐! 귀인 상봉수가 들었어!” (역술인야말로 ‘갑’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아닐까) 코끝에 돋보기를 걸치고 콩을 고르다보니 작고하신 시모생각이 난다. 개다리소반의 콩을 하나하나 고르실 때면 깔끔도 유난하시다 싶었는데, 내가 어느 새 그 뒤를 밟고 있다. 씁쓰름하게 씹히는 쭉정이 하나에 밥맛을 다 잃는 연식이 되고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사안이 나이가 들면서 달리 생각되기도 한다. 영화 의 남녀가 사랑에 대해 정의하는 대목이 나온다. 남자가 “사랑이란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이라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자, 여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한다. “어릴 때 오래 기르던 개가 있었다. 새끼도 많이 낳고 늙어서 병이 들었다. 항문에 구더기가 잔뜩 끼어 살 썩는 냄새가 어찌나 지독하던지 모두 안락사를 시키자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밤새도록 손가락으로 구더기를 하나하나 파내고 썩은 살을 닦아 내셨다. 그 개는 아빠보다 더 늦도록 살았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이런 얘기에 마음이 애잔해지는 것을 보면, ‘사랑은 뜨거운 그 무엇’이어야 한다던 씩씩한 지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듯하다.
아주 높은 산에 올라본 적은 없지만 인생과 등산은 닮은 구석이 많다. 초원지대에서 활엽수림대, 침엽수림대, 고산식물대로 이어지는 산, 어린 시절을 거쳐 결혼 적령기가 되고 장년기를 지나 노년의 죽음에 이르는 삶. 산의 해발고도에 따라 생태계 풍경이 바뀌듯이 나이 대에 따라 당면과제가 변해간다. 오를수록 구력이 붙기도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시련과 무관한 세대란 없을 터이다. 근래에 들어 편찮으신 분들 소식을 자주 듣는다. 어느덧 몸의 눈치를 봐야 할 지점에 이른 것이다. 이 지점을 지나 60대, 70대, 80대에는 어떤 카드가 기다리고 있을까?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는 지인의 말씀마따나 장수가 재앙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나이에 걸맞은 장점과 단점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완벽한 삶이란 아랫배 살을 빼서 볼에 집어넣는 것이다”는 우스개처럼, 세월 앞에 어떤 것도 견고하지 못하리라.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니 세밑이 다가온 모양이다. 우리가 12월 모임에 ‘망년회’라는 이름을 붙이듯이 이 즈음에서는 걱정거리도 당분간 접어두자는 심정이다. 인디언 체로키족이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일 년 열두 달 중 마지막 한 달만이라도, 눈앞의 나무만 보지 말고 산 아래도 굽어보고 산 정상도 올려다보며, 아득히 잊고 지내는 삶의 신비를 새겨보자는 의미가 아닐까. /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