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뜻 깊은 결혼식

기사입력 : 2014년 10월 28일

뜩깊은 결혼식

며칠 전, 특별한 결혼식에 다녀왔다.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4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시골 마을에서 치르는 결혼식이었다. 결혼의 주인공은 3년 전 한국에 들어가 화성시에 있는 한 식품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23살 아가씨, 한국에 가기 전에는 우리 학교에서 청소원으로 일했었다.

학교 청소원을 일하던 언니가 결혼하면서 그 후임으로 17살인 그 동생이 학교에 들어와 일을 시작했다. 언니 못지않게 일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심성이 곱고 인사성이 밝아서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다. 사무실과 숙소의 모든 열쇠를 맡길 정도로 신뢰가 가는 친구였다. 가난한 집안을 위해 받은 월급의 거의 대부분을 부모님께 보내 드리는 효성스런 아이였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지날 무렵, 어떻게 하면 이 친구를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근로자로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일을 좀 줄여 주면서 틈틈이 한국어를 가르쳤다. 겨우 초등학교를 마친 학력이라 배움은 더뎠지만 한국 취업 희망 근로자가 치르는 한국어 능력 시험을 무난히 통과했다. 그리고 한국에 취업해 들어갔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저 월급 받았어요!”
첫 월급을 받고는 기쁨에 겨워 목 멘 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한국에서 한 달 일하고 나서 캄보디아에서 받던 월급의 10배 이상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가끔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해 오곤 했다.

한국에서 일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녀의 부모로부터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딸이 한국에서 보내준 돈으로 2층짜리 기와집을 짓고 친척과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이는 자리였다. 다 쓰러져가던 초목집이 작지만 산뜻한 2층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는 사람마다 새 집 곳곳을 둘러보고, 동네가 떠나갈 듯 확성기로 음악을 틀어대고 노래를 부르면서 집들이 잔치를 벌였다.

결혼하기 1주일 전, 예비 신랑 신부가 나를 찾아왔다. 밤 늦게 한국에서 돌아와 학교 근처에서 자고 첫 번재 청첩장을 나에게 건네고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 날 한국에서 사귄 같은 캄보디아 근로자를 신랑으로 맞아 결혼식을 올렸다. 한 달 동안의 결혼 휴가가 끝나면 두 사람이 다시 한국에 들어가 근로 계약 기간을 마치고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 동안 모은 돈으로 땅 2~3헥타를 살 수 있다니 동네에서 만년 가난뱅이로 살던 집안이 이제 부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일을 시키는 것이 죄스러운 정도로 가녀리고 앳된 17살 소녀가 열심히 일을 해서 당당히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듬직한 배필을 만나 새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참 아름답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로연은 비록 조촐하고 소박했지만 이전에 가 본 어느 결혼식보다 화려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모습, 캄보디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