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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역사탐방] 앙코르 시대 이후의 캄보디아 2
캄보디아는 앙코르의 쇠퇴 이후 거의 오백년간 쇠락의 길을 걸었는데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앙코르에서 프놈펜 지역으로 왕조의 중심이 되어 상업국가로 왕조의 명맥을 이어가던 시기와 1594년 타이왕조에 의해 롱백이 함락되어 태국과 베트남 왕조의 간섭에서 프랑스가 등장할 때까지의 후반기로 나누어진다.
1434년 뽀니여얏 왕은 뚤 바싼 (현재의 스레이 산토르) 지역을 포기하고 메콩강 줄기를 따라 내려와 현재의 프놈펜(혹은 짜토목)으로 이동한 뒤 신속하게 새로운 수도를 건설한다. 이전의 수도인 뚤 바싼 지역을 홍수로 인해 포기한 왕은 프놈펜의 높은 지대에 왕궁을 건설하고, 강변을 따라 성벽과 부두를 만들었다. 그리고 앙코르의 전통을 따라 모든 지역에 수로 시스템을 건설하였다.
롱백 지역으로의 이동은 타이 왕조의 침략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이동이었을 수도 있다. 16세기 후반에 왕에 의하여 앙코르 제국의 복원이 시도되었다는 비문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버려진 앙코르를 발견했던 왕은 왕정을 앙코르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앙코르 왓에 남아있는 비문에는 1577년에서 1578년 사이에 일부 복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아유타야 왕조는 정치적인 혼란과 다른 왕조의 약탈로 쇠약해져있었다.
그러나 앙코르를 복원하려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롱백 지역으로 이동해야했는데 이는 아유타야 왕조가 다른 왕조의 약탈로 쇠약해져 있으나 아직도 위협적인 존재로서 빈번한 약탈로 인해 앙코르의 많은 지역이 이미 아유타야 왕조 하에 있었고 많은 인구가 아유타야의 병력으로 징발되어 갔다. 게다가 수로망의 파괴는 경작도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앙코르의 복원은 불가능했고 왕조의 기반을 닦았던 롱백 지역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앙코르에서부터 상업에 종사하고 대토지를 소유했던 실권자들은 메콩강의 해상무역을 통해서 더 큰 기회를 얻게 되었고 메콩강을 따라 올라오는 인도, 중국 등의 외국 상인과 접촉하므로 국제적인 무역과도 연결되어 푸난 시대 이후 다시 해양상업국가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 글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 크메르어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