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

기사입력 : 2014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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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일하러 갔던 근로자들이 가끔 찾아온다. 대부분 취직을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인데, 그 중에는 우리 학교 출신도 있고 다른 데서 한국어를 공부했던 사람도 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이상 한국에서 생활한 이들이라 대부분 기초적인 한국어 구사를 하지만 한국어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 월급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라 월급이 많은 한국 기업을 찾고자 하지만 캄보디아의 현실은 이들의 요구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나서 선뜻 취업을 알선해 주기가 어렵다. 한국 업체에서는 주로 한국어 능력자를 원하는데 간단한 통역 정도도 소화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취업을 시켜 주어도 한 곳에 오래 붙어 있는 못한다. 한국에서 높은 노동 강도를 버티며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 분야에서나 잘 견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편하고 쉬운 것을 좇는 경향이 강하다. 또, 수중에 돈이 좀 있다는 것 때문에 근로 의욕이 없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몇몇은 가끔 차를 몰고 나타나기도 하는데, 요즘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일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하는 게 보통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았다 하더라도 뚜렷한 일자리도 없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일시적인 과시 수단일 뿐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3년 이상 일을 하고 왔는데도 모아 놓은 돈이 별로 없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돈을 모았다는 사람이 반수가 채 안 된다.

대다수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수준이다.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궁색하게 사는 것이 그들의 습성 같은 생활이다. 혹여 수중에 많은 돈이 들어와도 그것을 아끼고 절약해서 미래를 준비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듯이 보인다. 한국에 취업해 들어가면 적게는 10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는다. 캄보디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임금이라 처음에는 자신들도 놀란다. 그렇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참는 심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 일에 치중하며 돈을 탕진하는 근로자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전화 통화료만 매월 몇 십 만원씩 나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집에 꼬박꼬박 돈을 부쳐 주는 근로자도 많은데, 캄보디아에 있는 가족들 또한 있으면 쓰고 없으면 참는 심리가 작용해서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쳐 주는 돈을 받으면서부터 씀씀이가 달라진다.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돈 자랑을 하고 선심을 쓰며 과시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래서 수년간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예전 그대로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의 의식이 빚어 낸 결과 때문이다.

“한 달에 100만 원씩 3년 짜리 적금을 들고 싶은데 사모님께 도와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제가 은행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요…”

학교에서 일하다가 한국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 근로자가 전화를 했다. 마침 한국의 우리 집 근처의 공장에 취직을 해서 쉬는 날이면 우리 집에 찾아와서 궂은일을 돕고 있는 친구다. 한 달 전 한국에 갔을 때, 캄보디아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지 말고 한국의 은행에 맡겼다가 일 끝내고 돌아올 때 목돈을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캄보디아에 있는 가족들도 그렇게 하기로 동의를 했다고 한다. 3년만 참으면 3만 달러 이상을 모아 시골에서는 가난뱅이가 부자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니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