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양말

기사입력 : 2014년 10월 01일

발가락_양말

솔직함이 지나쳐 사람을 당혹하게 만드는 후배가 있었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그렇듯이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면도 있었다. 특이한 성정덕분에 그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 마른 침이 넘어가는 얘기도 자주 얻어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록달록 색동으로 된 발가락 양말을 신고 나타나 한참 명랑을 가장하더니 실연했음을 털어놓았다. 그 남자로 인해 자신의 성감대가 발가락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특유의 고백과 함께, 엉뚱하게도 이별 의식으로 발가락 양말을 신었다며 울먹였다. 사랑에 빠진 청춘의 증세란 만취한 사람과 비슷해서 구경꾼 입장에서는 익살이 동하게 마련이라, “<무릎과 무릎 사이>라는 말은 들어 봤지만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는 또 처음이네.” 눙치며 위로했던 것 같다.

사람의 인식은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지 그 후 발가락 양말을 보면 무좀 습진에 대한 것보다 에로틱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별난 성향이다 싶을 수도 있지만 그리 빗나간 상상은 아니다. 대부분의 문명에서 여성의 발이나 신발을 에로티즘의 심벌로 여겼으니. 발을 성적으로 느끼는 풋 페티시즘(Foot Fetishism)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펄벅의 소설 <대지>에 신랑 왕룽이 새색시 오란의 넙대대한 발을 보고 실망하는 대목이 나오듯이,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전족이다. 실제로 발에는 26개의 뼈와 33개의 관절, 94개의 근육에 무려 7,200개의 말초신경이 모여 있다. 촉각에 관한한 어느 부위보다 예민한 곳이 발바닥이다. 의심스러우면 깃털 먼지떨이에서 한 가닥 뽑아 발 간지럼을 한번 타 보시라.

캄보디아에 처음 관광 왔던 때만 해도 양말은커녕 신발도 없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언제부턴가 신발은 필수품이 되었지만 얼마 전에 두 발가락 양말을 신은 멋쟁이 여성을 만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에 끈이 달린 캄보디아 대표 신발인 ‘쪼리’를 신기 위한 양말로, 앞굽도 조금 있고 뒷굽이 상당히 높은 통굽 쪼리를 신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섹스어필한 하이힐이 캄보디아 도시 여성의 출퇴근 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기엔 부적합해 하이힐 대체용으로 멋을 낸 듯하다. 굳은살이 밴 맨발에 땟국이 흐르는 걸인이 상징이던 캄보디아로서 불과 수 년 만에 이룬 눈부신 발전인 셈이다.

세계적인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매력을 과시하기 위한‘사치’와 인간의 궁극적인 욕구인‘성욕’이 자본주의 생성 및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을 조목조목 밝힌 바 있다. 에로티즘을 부추기는 소비야말로 자본주의 성장의 필수요소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예쁜 발은 부, 귀, 관능의 상징이었다. 이 무더운 나라에 양말이라니, 햇볕에 그을리고 갈퀴처럼 성긴 발보다 백설처럼 희고 앙증맞은 발을 갖고자하는 여인들의 소망 탓이리라. 그 소망은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는 캄보디아 자본주의의 욕망과 닿아있지 않겠는가. /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