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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이 보는 세상] 군기침
유일의 이름을 걸고 캄보디아 교민 마당에 인사를 드린다. 내달이면 프놈펜에 거주한 지 옹근 일 년을 맞게 되므로 그간의 사연들을 서서히 풀어볼 때도 된 듯하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 넘겨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매 뭘 아는 체 나서려는 일이 아니다.
첫밗에 드릴 말씀은 글재줄랑 글쟁이들 몫이라는 각성이다. 그럼 뭣 땜에 이따위 거친 글로 피곤한 독자들 괴롭히려 하는가. 때론 씀바구가 고기보다 몸을 살지운다는 진리를 안주 삼아 현지인 및 교민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의 밑술들에 취해보고 싶어서다.
캄보디아 하면 바로 앙코르 와트가 떠오르고 그리고는 그게 전부였다. 가끔씩 얻어 듣는 소식들은 내전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의 나라라는 인상을 강화시키곤 했다. 그러기에 오고 싶다는 의지 강했던 곳은 아니지만 인연의 힘은 호불호를 뛰어넘는다.
바삭 강변 임시 숙소에서 묵으며 며칠만에 나의 내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초심은 이왕 온 바에야 애정 없더라도 그저 무탈하게 지내다 가겠다는 심산이었었다. 그런데 입에 미소를 물고 사는 대다수 현지인들은 내 마음의 밑둥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불과 열흘 안짝의 체류가 일으킨 바람은 내 가슴에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의 불을 지폈다. 어차피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의 일정에는 캄보디아에 대한 공부가 들어앉기 시작했다. 생각의 몇 계단을 밟아오른 결론은 이 나라 말을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올해 벽두에 야심만만하게 캄보디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독선생을 들이고 말뿐 아니라 문자까지 학습 대상 삼았다. 하지만 같은 글자가 때에 따라 달라지는 발음을 만나자 머리에 쥐가 났고 굳센 결심 운운은 무리수였음을 오래지 않아 뼈에 울리도록 체득했다.
캄보디아어를 배우려 한 것은 당연히 모두에 적은 대로 내 견해를 그들의 말과 글로 나누려 했기 때문이다.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숱한 자야바르만 7세의 상들을 보면 나는 누구냐 물었었다. 거의 모든 현지인들은 반갑게 이름을 말해주며 존경한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질문 “왜?”에 대해 그들은 우물쭈물 말꼬리를 흐렸다. 처음에는 이상했으나 유례없는 질곡의 현대사를 겪으며 문화가 사라져버린 아픔을 곧 알았다. 흐려지는 말꼬리의 뒤에는 읽을거리조차 변변치 않은 오늘의 상황이 있었다.
그런 주저의 뒤안길을 흔치않은 자료 뒤지며 힘들여 걷노라면 너무도 슬픈 이 나라 역사 현장과 마주치게 된다. 그러고 나면 누구라도 이런 이야기들을 그들에게 가르쳐주고픈 주제넘은 욕구를 어쩌지 못하리라 짐작한다. 자신들 역사를 너무나도 몰라서 연고 없는 이방인조차를 안타깝게 하는 것이다.
맹자님 아니더라도 상식 가진 인간의 마음속엔 측은지심 있음을 보통의 우리는 알고 있다. 저렇게 착한 미소를 외국인인 내게 날리는 저들에게 나는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글을 배워 소통하고자 하던 꿈은 접었으니 어쩔 것인가.
물론 국가 차원에서 한국은 벌써 캄보디아에 무상 유상의 원조를 공여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또한 첫 순위를 다툴 만큼의 수많은 관광객이 해마다 다녀가며 금전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현황이 이러하니 내가 굳이 나선다 해서 무슨 특별한 할 일 있으리오.
그런데 과연 돈이나 물질의 원조가 그 나라를 돕는 오로지 하나의 길인가. 아니 그러한 도움으로 그들의 경제가 나아지고 국부가 커지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내가 꿈꾸었던 소통의 길이야말로 그런 바탕 위에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일은 아닐까.
비록 캄보디아어로 그들과 대화하고픈 꿈은 접었지만 여기 쓰려는 글들은 중요한 대안의 하나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러므로 혹 제 글 접하시는 독자분들께서는 저의 자그마한 생각의 편린들을 주변에서 함께 생활하는 캄보디아 사람들과 나누어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 진정성 전달된다면 손짓발짓 바디랭귀지에 담긴들 어떠하겠는가.
그러니까 출발의 의욕은 소통이요 나눔이요 사랑이요 공생이다. 지구가 하나의 마을로 변해버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요 서로 돕는 손길은 엔지오만의 몫이 아니다. 모쪼록 허물은 남더라도 담고자 하는 진심만은 읽는이들 가슴으로 옮겨가길 감히 희망한다.
처음이라 욕심만 앞서고 서투름은 끝이 없다.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로 없던 일로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무릅쓰고 적은 글에 담긴 쥐꼬리만한 캄보디아 사랑 여러분들 통해 그것의 눈꼽만큼이라도 그들에게 전해진다면 더 바람 없겠다.
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
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