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문제, “병영문화”보다 “병역제도”혁신을

기사입력 : 2014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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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인지상정이라더니 아들이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군대 뉴스만 눈에 들어온다. 임모 병장이 동료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나 윤모 일병이 동료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고 숨진 사고 모두 관심사병 방치 문제가 제기됐다. 부모에게 자식은 다 그렇겠지만 우리 아들도 유순한 편인데 사춘기를 거치면서 과도한 아드레날린 탓인지 기상할 때면 맹수처럼 포효하곤 한다. 녀석도 혈기왕성한 동년배들과 폐쇄된 장소에 수용된다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옛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양친의 관심 속에 풍요롭게 자란 신세대 사내들을 한 곳에 몰아 놓으면 대부분이 “관심사병”증후를 보이지 않을까싶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가 오나라 궁중의 미녀 180명을 오합지졸에서 군기충천한 군인으로 변모시킨 이야기가 있다. 우선 두 편대로 나누고 왕이 가장 총애하는 궁녀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임명한 후 훈련을 시작했다. 군율과 행동 법칙에 대해 거듭 설명하며 명령을 내려도 “아이, 알았사와요홍!”, 궁녀들은 시시덕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손자는 “군령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것은 하급 지휘관의 잘못이므로 군법에 의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두 대장에게 참수형을 내렸다. 오왕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두 여인의 목을 베었다. 그 이후 상황반전에 대해선 말해 뭐하리. 어쨌든 공포에 질려 그 순간만큼은 기강이 잡혔겠지만, 영문도 모른 채 끌려나와 느닷없는 곤혹을 치른 미녀군단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을 터이다. “기강”과 “사기”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전시에 적에게 행사해야할 폭력이 평시에 아군에게 가해지고 있다. 기강 잡기를 빙자한 병영의 폭력게임이 생때같은 청춘을 탈영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시쳇말이 현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병영에서는 전투력, 전우애를 다지는 일보다 의미 없이 시간이나 때우는 게 지상과제이고, 군 · 정 수뇌부에서는 남북 평화공존 도모나 주변국과 공동방어 결성 등 정치력 및 외교력을 동원해 국방부담을 줄여나갈 생각보다 70만 대군을 마냥 끌고 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게 지상과제인 듯싶어서다. 일련의 군 파행사태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고 한다. 평생토록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인데 군대 같이 특수한 환경에서 단시일 내에 문화를 바꾸겠다니, 위기나 넘기고 보자는 미봉책으로 비친다. 현대에 들어 전쟁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다. 한국전 때처럼 소총과 대검으로 인해전술을 펴는 시대는 지났고 첨단무기로 소수정예가 치르는 하이테크전시대다. 애국주의 또한 옛말이고 개인주의가 득세하는 시대다. 불특정다수가 모인 집단에서 기댈 수 있는 건 문화보다 제도일 테다. 징집제에서 모병제로 이행해가는 세계적인 추세도 그렇고 모병제가 점진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국회 국방위원들 견해도 그렇고, “병영문화”대신 “병역제도”를 혁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싶다. / 나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