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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친정의 가세가 한창 기울었을 때 시집 간 친구가 있다. 집안 대소사가 돌아오면 제 주머닛돈으로 이것저것 장만해 친정 부모님 선물이라며 시댁에 내 놓곤 했는데 시어른들이 탐탁치 않아하시는 눈치였다고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던가 친정이 옛 부를 되찾게 되자 태도가 돌변해 사돈의 조그만 성의에도 화들짝 감동하시며 몇 곱절로 챙겨 주시더라는 것이다. 여자에게 잘사는 친정만큼이나 해외동포에게 잘사는 고국은 든든한 백이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등식이 얼추 맞는지 한국이 제법 잘살게 되면서 스포츠계 발전이 눈부시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우리나라는 종합 5위로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전 국민이 애면글면하는 축구가 최초로 올림픽메달을 따낸 쾌거는 인상적이었다. 나 같은 잠꾸러기가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을 챙겨 볼 정도였으니. 소문대로 전반의 투지는 대단해 결선진출의 파란도 기대해 볼만했다. 그러나 한 골을 내준 후부터 선수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게임의지는 간곳없고 동맹태업이라도 하듯, 느릿느릿 백패스로 일관하다 볼을 낚아챈 상대팀에게 별 저항 없이 실점을 내주까지 했다. 언론에서는 ‘초반에 몰아치다 먹히지 않을 경우 3,4위전에 대비한다.’는 감독의 큰 그림 구상이 그 이유라고 분석했다. 우리 배드민턴선수들이 고의적인 패배로 실격당해 관중의 야유 속에 퇴장하던 장면이 슬며시 겹쳐졌다. 동메달을 놓고 벌인 한일전에서는 브라질전의 무딘 움직임은 간 곳 없고 옐로카드가 7개나 쏟아질 정도로 투혼을 불태웠다. 심성이 삐딱한 나로서는 ‘메달획득과 병역면제, 동메달과 4강 간 어마어마한 포상금차이’라는 석연치 않은 함수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래도 브라질과 멕시코 결승전에서 내심 브라질이 이겨주길 바랬다. 실속이냐 신념이냐, 심적인 갈등을 겪었을 홍명보 감독에게 인간적인 동정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와 아슬아슬하게 비겼던 멕시코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IOC측은 선수사이의 경쟁이지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라는 올림픽 정신에 따라 국가별 메달순위를 집계하지 않게 된지 오래다. 글로벌 공동체의식을 지향하는 시대에 한국도 미숙한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이제 스포츠를 개인의 몫으로 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도 각본 없는 드라마의 진검승부를 보는데 있지 않은가. 장삿속, 속임수, 몸보신 등의 술수는 현실에서도 신물이 난 참이니까 말이다. 아마추어인 내가 나설 자리는 아니지만, 뼈 속까지 축구인이라면 타이틀을 위한 축구보다 스포츠를 위한 축구를 추구하는 태도가 정격(正格)이다. 친정이 잘 살게 되자 대우가 달라진 시어른들 얘기를 들려주면서 친구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던 것은 ‘진정성과 품격’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동메달을 따내 한국 축구사를 장식한 홍감독의 얼굴에서 한 가닥 그늘이 보이는 것은 내가 너무 과민한 탓일까.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