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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변 태
새해를 헐어 쓴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5월도 막바지다. 햇살 뜨겁던 프놈펜의 하루가 또 저물었다. 남편은 일찌감치 침대에 들어 책을 끼고 있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한 차례 스콜이 쏟아졌다. 캄보디아 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이 탓인지 잠자리에 들면 떨쳐버려도 그만이지 싶은 생각이 하나 둘 들러붙는다. 어디선가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 개굴개굴….., 그 자연교향곡의 베이스에 개구리 소리가 깔려있다. 기나긴 건기를 어떻게 버텼는지 구애를 위한 개구리의 맹렬한 합창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진다.
개구리의 놀라운 적응력을 다룬 TV 다큐멘터리를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개구리는 비가 수년에 한 번씩 내리는 건조한 사막지대에서도 서식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물이 귀한 사막의 개구리가 변태환경이 좋은 습지의 개구리보다 진화에 훨씬 앞서있다는 점이다. 개구리의 정상적인 변태기간은 두 달 남짓이나, 사막에서는 비가 오는 대엿새 안에 변태를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명줄을 타고난 것들의 살아남기 위한 적응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비가 온 탓인지 밤이 이슥해지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열대야답지 않은 싸늘한 기운에 잠이 깼다. 이 절기에 추위를 타다니, 몇 년 사이에 현지인처럼 길들여진 몸뗑이가 경이롭기 이를 데 없다. 팬을 끄고 창문을 닫는 등 수선을 피우다 보니 잠이 저 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어느덧 창밖이 부옇게 밝아 왔다. 집안에 난방장비가 있을 리 없고 우리 부부, 하는 수 없이 서로에게 인간난로가 되어주기로 했다. 열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거리를 최대한 좁히다 보니, 날렵 말쑥했던 새신랑은 간곳없고 세월의 더깨를 뒤집어쓴 중년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현빈 뺨치게 숱 많던 머리카락, 조인성보다 더 붉던 입술은(진짜다!)어디 갔을까? 사과처럼 싱그러웠던 살갗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식스팩 주름이 확실해야할 복부만이 유일하게 임산부의 그것처럼 탱탱하다.
세월이 누구라서 특별히 비켜가겠는가. 새벽 여명아래 드러난 중년 여인의 변태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현빈이 김태희랑 놀지 전원주 할마씨랑 눈이나 맞추겠어?’, 그나마 한때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사람과 더불어 변태해가는 게 다행이다 싶던 차에, 서당 개 삼년(실은 오팔년 개 이십오 년) 귀신같이 쥔장(?)의 뇌 정보를 스캔한 중고난로의 나지막한 넋두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드럽게 변태하기도 어려웠다구. 오십년도 훌쩍 넘게 걸렸으니……”/ 나순 칼럼리스트
*뉴스브리핑 캄보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