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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캄보디아의 엑설런시
몇 년 전 일이다. 직원에게 기숙사 학생 중에서 가끔 운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한 학생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그는 운전 면허증이 없었다. 오래 전에 분실했다고 했다. 난색을 표했더니 그는 당당하게 걱정을 말라고 했다. 잘 아는 사람이 경찰 고위층에 있어서 운전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를 추천한 직원도 맞장구를 쳤다. 찜찜했지만 그를 쓰기로 했다. 그가 새 면허증을 발급받기까지 두어 달이 걸렸는데, 그 동안 그가 모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캄보디아서는 아직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 법이나 규정에 따라 당연히 처리되어야 할 일인데도 처리 시간이 무한정 지연되거나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이 흔히 있다. 이러다 보니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힘 있는 사람을 찾게 되고 사이드 머니가 쏠쏠히 들어가기도 한다. 배경이 든든한 사람이야 걱정할 것이 없지만 다수의 일반 서민은 거기에서 오는 직간접적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하면서 살아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권세가 있는 사람이나 그 주변 사람들은 각종 이권을 독점하기도 한다. 빈부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고급 주택을 수 채, 아니 수십 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이 꽤 많이 있는 반면, 다리 하나 맘대로 뻗고 잘 거적때기로 지은 집 한 채 없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은 나라가 캄보디아다.
‘한 팀에 네 명까지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한 골프장 현관 로비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호일 뿐이다. 한 팀에 다섯 명이 플레이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일고여덟 명이 플레이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언젠가는 열 명이 플레이하는 꼴불견도 있었다. 그 뒤를 따라가야 하는 골퍼들에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모처럼 기분 풀러 골프장에 나갔다가 기분 잡치고 올 때도 가끔 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인가? 돈 있고 힘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들을 ‘엑설런시’라고 부른다. (사전을 찾아보면 excellency는 ‘각하’라고 해석된다. 캄보디아엔 ‘각하’가 왜 그리도 많은지…) 골프장 관리하는 사람 누구도 감히 제지하지 못하는 ‘높으신 분들’이다. 이들 중에는 개인 카트를 사서 골프장에 맡겨 놓고 자신만 이용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 어떤 사람은 라운딩에 카트 운전사를 따로 데리고 나오기도 하고 캐디를 두 명씩 데리고 라운딩을 하기도 한다.(채 날라 주는 캐디 하나, 양산 씌워 주는 캐디 하나. 나 미쳐!^^) 그들의 씀씀이 또한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다. 어느 한국인이 캄보디아 엑설란시와 골프를 치고 나서 캐디팁을 주려고 하는데(보통 5$ 정도 준다.) 캄보디아 인사가 자기 캐디에게 100$를 척 내밀어 황당했다는 일화도 있다.
매너에서 시작해서 매너로 끝나는 운동이 골프라고 하지만 캄보디아 골프장에선 예외다. 골프장에서만 그럴까? 아니다. 캄보디아인으로 골프 치러 다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다. 그들의 의식이 그러하다는 얘기는 사회 전반이 그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특권층과 일반 국민의 관계 속에서 그런 면면들이 요소요소에서 드러난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의 권세가 막강한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힘은 매우 취약하다. 특권층일수록 과시하거나 군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내놓고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여덟 명이 치는 앞 팀이 하도 밀려서 우리가 앞질러 나가겠다고 그 팀에게 양해를 구해 보라고 캐디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펄쩍 뛰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 돼요! 저 사람들은 돈 많은 엑설런시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