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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아는 것이 힘이라는데
여행 지도를 사기 위해서 서점에 들렀다가 캄보디아에서는 어떤 책들이 팔리고 있나 궁금해서 매장을 쭉 둘러보았다. 한 마디로 ‘캄보디아에는 책이 없다.’가 나의 결론. 프놈펜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 다양한 책들이 팔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 가장 관심이 많은 어린이, 교육 관련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동화책이 몇 십 종 있을 뿐 학습용 책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동화책이래야 불과 몇 십 페이지 두께에 4·6판 크기가 대부분이고 인쇄 상태도 매우 조잡했다. ‘한글 첫 걸음’과 같은 초보 캄보디아어 교재가 두 권, 숫자 공부에 필요한 책 서너 권, 생물이나 과학에 관련되는 그림책 십여 권이 눈에 띌 뿐 다른 참고 서적은 찾을 수 없었다.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학습서가 깔려 있는 한국의 서점 풍경과는 비교를 할 수 없었다. 성인 서적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옛날 어른들이 즐겨 보던 이야기책 느낌이 나는 소설책들이 30여권 깔려 있고 두세 개의 서가에 번역서들이 꽂혀 있었다. 전문 서적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인문 사회 관련 서적도 몇 권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서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어 원서 코너에는 어린이를 위한 책에서부터 성인을 위한 책까지 비교적 다양하게 구비되어 의아했다.
캄보디아를 알기 위해서 그 동안 꽤 많은 캄보디아 젊은이들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며 얘기를 나눠 보았다. 그러나 나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캄보디아의 전반적인 역사와 문화에 대한 것은 물론, 심지어는 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앙코르 와트에 대해서도, 폴포트로 대표되는 캄보디아의 근세사에 대해서도 관광객 수준의 이방인인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면 누구나 알 만한 일반 상식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캄보디아 젊은이들의 지식량이 한국의 중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서점을 둘러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으니 교양과 사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교과서 이외에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 참고서 같은 것이 없으니 학습량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 교육이 충실히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학교가 2부제나 3부제 수업을 하고 학생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도 기껏해야 서너 시간 남짓, 칠판 하나 덩그러니 달린 찜통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캄보디아의 현실이다. 여기에 학습 교재도 불충분하고 교사의 질도 낮으니 무엇을 얼마나 배우겠는가?
프놈펜에는 영어 학원이 많다. 한국과 비교를 하자면 한국의 입시 학원만큼이나 많다. 한 달에 6,70달러 내야 하는 학원이 있는가 하면 한 시간에 500리엘(120원) 내고 공부할 수 있는 학원도 있다. 학원은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학생들로 붐빈다. 앳된 어린아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공부하는 대상도 매우 다양하다. 영어 학습 열기만큼은 한국의 입시 열기 못지않다. 그래서 그럴까? 캄보디아 사람들 중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많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지만 영어를 곧잘 하는 사람도 꽤 있다.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학원에서 몇 달 배웠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땅한 일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선망하는 외국인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를 위해서 영어 배우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먹고 살기 위해서다. 캄보디아의 이런 영어 학습 열기가 다른 분야로까지 확장되는 날은 언제일까? 폭넓은 지식 안에서 지혜가 싹트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개인과 국가의 역량이 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캄보디아 사람들은 얼마나 절실히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