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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그 날은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옥상 위에 올라가서 보면 서쪽 편으로 늪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지금은 거의 매립이 되어서 10% 정도만 늪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공터다. 그런데, 이른 아침만 되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든다. 용변을 보기 위해서다. 매립을 하느라고 여기저기 쌓여 있는 흙더미나 늪지대를 덮고 있는 연잎과 갈대숲을 가리개 삼아 볼일을 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사람도 더러 있는 걸 보면 꽤 멀리서 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살고 있는 집에 화장실이 없거나 여러 사람이 같이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인데, 프놈펜의 변두리이긴 하지만 이미 곳곳이 개발이 된 도시의 아침 풍경이 이런 걸 보면 보잘것없이 사는 시골 사람들은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우리 집 바로 옆은 어패류 도매 시장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꼬막이 주로 거래되고 소금에 절인 생선도 취급하는데, 새벽부터 수백 명이 몰려들어 몇 시간 동안 복작댄다. 냉장 시설은 눈에 띄지 않고 기껏해야 얼음을 채우는 정도로 생선을 취급하기 때문에 바람이 우리 집 쪽으로 부는 날이면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해서 문을 열어 놓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배출되는 하수. 모두 바로 옆에 펼쳐진 늪지대로 흘러 들어간다. 또, 시장 바로 옆에서부터는 수상가옥이 길게 늘어서 있다. 늪지대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판자로 지은 집들이다. 벽 옆으로 플라스틱 관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상수도 시설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생활하수와 오물 처리를 위한 시설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 이것들도 모두 고스란히 늪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캄보디아를 물의 나라라고 한다. 물이 만들어 놓은 비옥한 토양으로 드넓은 국토를 이루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민족이다. 우기에는 곳곳이 침수되고 메콩강물이 톤레삽호수로 역류되어 흘러 들어감으로써 그 물에 실려 온 유기물이 농작물을 키우는 원천이 되고 각종 물고기를 선물로 가져다주기도 한다고 하니 물의 나라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캄보디아 곳곳이 호수나 강, 늪지대로 덮여 있어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물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가 캄보디아다. 관개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자연에 의지해서 겨우 농사를 짓는 곳이 대부분이고 특히 건기에는 먹을 물이 부족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 많은 한국 분들이 정성을 모아 우물 파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배 아프고 머리 아프다는 사람이 유독 많다. 이곳에서 약국을 하시는 분의 말에 의하면 그 원인 중의 하나가 물이라고 한다. 몸에 해로운 중금속이 많이 들어 있는데다가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시기 때문에 위장병이 많고 그로 인해서 두통까지 유발된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대중식당에 가면 제일 난처한 게 화장실이다. 볼일은 봐야 하는데 불결해서 들어가기 싫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보면 그 나라의 위생 상태와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캄보디아는 참 갈 길이 멀다. 캄보디아 사람의 평균 생존 연령이 한국에 비해 20여년 뒤쳐진다고 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함께 위생적인 생활과 의료 혜택이 나아져야만 그 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볼일을 보러 늪지대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날은 언제일까?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그 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