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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칼럼] 서로 도우며 사는 사람들
가끔 대문 앞에서 손을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나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부녀자,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럴 때마다 주머니를 뒤져서 잔돈 몇 푼을 건네준다. 나에게는 별로 부담이 안 되는 아주 작은 돈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다. 눈빛을 보면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침이나 낮에는 스님들이 대문 앞에 서서 탁발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같이 일하는 캄보디아 친구들이 스님들 앞에 나아가서 공손한 자세로 시주를 하고 그들로부터 축원을 듣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왕궁 근처 강변에 가면 조그마한 사당이 있고 참배객들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
저녁에는 꽃과 향을 바치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참배를 기다리느라 광장에 길게 줄을 서기도 한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구걸을 하는 노인들이 쭉 둘러앉아 애절한 눈길로 도움을 청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도 성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프놈펜의 연원을 말해 주는 사원인 왓 프놈의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다리나 팔이 잘리는 등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전쟁의 피해자들이다. 역시 이들에게도 사람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6,70년대 한국에는 참 거지도 많고 상이군인도 많았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고 너나없이 가난하던 시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골 동네에서도 하루에 몇 명씩 집으로 거지들이 찾아오고 가끔 상이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때의 우리 어른들을 보면 비록 어렵게 사는 처지이면서도 구걸을 하러 오는 그들에게 보릿쌀 한 줌, 밥 한 덩이를 내어 줘서 보내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경제 발전에 따라서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결과이기도 했지만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이들을 격리시킨 측면도 있었다. 아무튼 한국은 거지가 없는 나라처럼 보였다.
물론 지금도 가끔 전철을 타러 나가다 보면 지하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철 안에서 찬송가 테이프를 틀며 적선을 구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마주친다 해도 도움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렇다. 언제부턴가 한국에는 노숙자들이 늘어나서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어느 면에서는 과거의 걸인이나 다르지 않지만 이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과거와 다른 것 같다. 정부나 구호 기관, 종교 단체 등이 나서서 이들을 돕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도움의 손길은 매우 인색한 편이다.
별로 풍족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조차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선을 아끼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태도를 보면서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인색하게 살아왔는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남을 돕는 것은 별개라는 사실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함께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직원들과 이런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 밖에서 손을 벌리는 사람이 있으면 구걸하는 사람이건 스님이건 누구든 그냥 보내지 말자. 먼저 본 사람이 도움을 베풀고 나중에 나에게 돈을 청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