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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사이버 시대의 문맹 퇴치
우리는 온라인 광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미국 남북전쟁 전후만 해도 집배원이 가가호호 방문하는 우편 광고 시대였다. 당시 <뉴욕 우편 행낭 – 재치와 웃음, 사랑의 잡지>라는 월간지가 있었다고 한다. 재밌는 이야기에 곁들인 도색 그림과 성인용품 우편통신 광고로 꾸며진 잡지로, 주 수입원은 비밀이 보장되는 통신판매용 도색서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비밀 보장 배송’ 방식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여전한 모양이다.‘읽자! 읽자! 명문가 여인들의 적나라한 고백’,‘수줍은 신랑을 위한 00박사의 조언’,‘사랑의 기술에 대한 무삭제 원판’ 따위 제목의 책으로, 처음에는 군인을 대상으로 판매했으나 어찌나 입소문이 빠르던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선정적인 내용의 책을 읽고자 몸이 달은 선남선녀의 하늘을 찌를 듯한 독서열이 19세기 문맹률이 높았던 신대륙의 문맹 퇴치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기록이 야사에 전해져 오고 있다.
초기 문자는 특권층에 관련된 기록이나 정치권력의 선전도구로 이용됐으나 평민들에게 보급되면서부터는 시와 유머의 전달 수단으로 쓰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알파벳은 BC 740년경 술항아리에 새긴 글로“제일 날렵하게 춤추는 자가 이 단지를 상으로 받으리라”는 춤 대회를 알리는 한 줄의 시였다. 한국은 독자적인 민족 문자를 고안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민족이다. 1446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래 한자를 옹호하는 기득권의 반발에 부딪혀 보급되는 데 오래 걸렸다. 그러나 17,18세기 양반에 대한 풍자와 재자가인의 사랑 놀음을 다룬 한글소설이 등장하면서 한글전파가 급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저잣거리에서 소설을 읽어주는 직업이 등장할 정도였다니 그 열풍이 짐작이 간다.
“책 속에는 과거의 모든 위인이 누워있다.”는 말이 있듯이, 3천 년 인류 지성이 책에 집적되어 있다.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나 시대정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서점인 것이다. 캄보디아 서점의 경우 볼만한 책은 대부분 외국인을 위한 영문본이고 크메르어본은 그 종류나 내용면에서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얄팍한 외국 위인전이나 아동용 교재가 전부다. 요즘 인터넷과 게임이 유행하면서 종이책의 역할은 오락적인 요소보다 지식과 교양분야로 한정되는 듯하다.
호모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라는 정의처럼, 유희야 말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일 터이다. 아직도 문자나 문맥 해독률이 낮은 캄보디아가 엉뚱한 곳에서 문맹퇴치의 희망이 보인다. 너나없이 페이스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책장 대신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한껏 멋을 부린 사진과 그럴싸한 사연을 올리고 온라인 친구 사귀기에 여념이 없다. 나라고 못할쏘냐, 덧글과 댓글을 달 욕심으로 문맹탈피에 기를 쓸 것 같다. 종이책을 건너뛰고 바로 전자책으로 진입, 사이버작가 탄생도 시간문제일 듯싶고.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